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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제네바 인권소식 ④ > 전쟁의 광기, 죽어가는 인권

체첸 지역 인권침해 조사촉구


"체첸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다. 수만 명에 이르는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이들 다수가 여성․아동․노인이다. 전쟁 초기, 러시아 연방의 폭격으로 인해 그로즈니에 있는 한 병원에선 환자 150명이 죽었고, 그 중 13명이 신생아였다. 인도주의에 반하는 전쟁범죄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유엔인권위원회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주제는 단연 '체첸 문제'이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러시아 연방군과 체첸 반군간의 죽고 죽이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 이 전쟁의 최대희생자는 의심할 나위 없이 죄 없는 민간인들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31일부터 5일 간 체첸, 잉구세티아, 다게스탄 등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메리 로빈슨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전쟁의 광기가 빚은 인권 문제를 다시금 환기시켰다.

로빈슨 씨는 "이번 방문에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대량학살․즉결처형․고문․자의적 구금 및 약탈에 대한 증언을 직접 들었다"며 인권침해 사실을 확인했다. 나아가 로빈슨 씨는 "이 사태의 주요한 책임은 러시아 연방정부에게 있다"며 "인권침해를 조사할 독립적인 국가조사위원회의 설치"를 러시아 정부에 촉구했다.

하지만 바실리 시도로프 러시아 정부 대표는 뒤이은 발언에서 "러시아 연방은 테러리스트를 진압하기 위한 행동에 나선 것일 뿐"이라며 로빈슨 씨의 주장을 일축했다.

한편 같은 날 회의장 밖에서는,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체첸의 어머니들(Mothers of Chechnya)'이 '체첸,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란 토론회를 열고 "러시아 정부는 평화적인 해결 가능성을 봉쇄한 채 대량학살을 자행하고 있으며, 이는 체첸 인민의 자결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체첸 지역내 러시아 연방 군인들의 즉각 철수 △국제조사단 파견 △전범재판소 설치 △희생자들에 대한 지원 등을 촉구했다.


인권고등판무관이 보고한 몇 가지 사례

◎ 지난 1월 21일 두고온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려고 그로즈니로 돌아가던 한 여성은 다른 두 명의 여성과 함께 검문소에서 러시아 군인에게 붙들렸다. 군인들은 이들의 눈을 가린 채 어느 부서진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살려달라"는 호소를 무시하고 차례로 여성들에게 총을 쏘았다. 첫 번째 여성의 경우, 총알에 머리 일부분이 튕겨져 나올 정도였다. 끝에 서 있던 그녀에게 날아온 총알은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군인들은 쓰러진 여성들 위에 막무가내로 매트리스를 덮고 불을 붙였다. 다행히 그녀는 죽기 직전 숨어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됐다. 하지만 상처가 너무 심해 급히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 2일 폐허가 된 도시 체첸의 그로즈니를 방문했다. 살아남은 이들 대부분은 여성과 노인. 그들은 심각한 식량 부족과 어딘가에 갇혀 있을 가족을 걱정했다. 그들간엔 러시아 연방 정부는 물론 체첸 반군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체첸 반군이 민간인들의 안전에는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며. 내가 만난 다수의 체첸인들이 한 말, "우리 모두를 악당으로 취급하지 말아달라." [제네바: 최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