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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기본적 권리를 줄자로 재는 나라

집회·시위현장에 신종 기동타격대가 등장했다. 줄자 하나만 들고 백점 만점의 집회·시위통제 효과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등의 경계지역으로부터 1백미터 이내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안된다'는 집시법 조항을 애용하여 삼성생명과 광화문 동화 빌딩 등이 줄줄이 '외국공관 유치작전'에 나선 결과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의 집회·시위 권리의 초라함을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부도덕하며 자의적인 행동을 할 때, 그에 맞서 공개적으로 항의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적 권리이자 사회에 대한 의무이다. 이에 혹자는 왜 하필 집회·시위로 의사표현을 하려 드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것은 의사표현의 효과적인 수단이 집중·독점되어 있는 현실 사회에서 집회·시위란 사회적 약자나 정치적 소수자가 택할 수밖에 없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집회·시위로 의사표현을 하려 할 때 어딜 찾겠는가? 그 표현을 가장 들려주고 싶은 대상을 찾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갈 곳은 없다. 집회·시위가 제한된 주요도로는 세종로에서 통일로에 이르기까지 거미줄처럼 촘촘하며, 청와대·국회·법원 등을 비롯한 공공기관은 폐쇄된 골목이며, 외국공관을 경쟁적으로 유치한 건물들은 길모퉁이마저 막고 서있다.

문제의 뿌리인 집시법이 어떤 법인가? 그것은 5.16 이듬해인 62년에 제정, 유신체제하인 73년과 서울의 봄을 뒤로 한 80년에 개정되었다. 즉 국회가 아닌 군사독재자들의 불법 '입법기관'에 의해 생명을 부여받아온 법이다. 이 과정에서 설정된 광범위한 금지구역은 보물찾기 하듯 집회장소를 찾아내야 하는 불합리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었다.

물론 집회·시위의 권리에도 타인의 기본권과 공익을 위한 제한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외국 공관의 경우, 외교관의 안전과 업무수행을 위협하는 시위·집회 방식을 용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1백 미터의 줄자'로 상징되는 무조건적 집회·시위 금지에는 의사표현의 자유가 숨쉴 수 있는 '공공의 광장'에 대한 기본적인 고려가 없다. 천차만별일 수 있는 집회·시위의 방식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판단 없이 집회의 가능성 자체를 원천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앞에서 우리의 소망을 외치고 싶다. 미국대사관 정문 앞에서 후련하게 "양키 고 홈"을 외쳐대고 싶다. 줄자를 들고 집회장소를 찾아 헤매는 일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우리는 '1백 미터' 안으로 뛰어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