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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외국대사관 집회봉쇄 수단 악용

삼성그룹, 건물 내 엘살바도르 대사관 유치


대기업이 집시법의 집회 금지규정을 악용, 노동자들의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지난 3월 24일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는 남대문경찰서로부터 집회개최불가 통보를 받았다. 25일부터 삼성생명 본사 건물 21층에 엘살바도르 주한대사관이 입주할 예정이기 때문에 이 건물 앞에서는 어떠한 집회도 불가능하다는 이유였다. 현행 집시법에 따르면 국내주재 외국 외교기관의 경계지점으로부터 1백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안되며(제11조), 이를 어길 경우 주최자, 질서유지인, 집회참가자 모두 처벌받게 된다.

결국 삼성그룹은 노동자들의 집회가 자주 열리는 건물에 대사관을 유치함으로써 집회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 것. 앞서 삼성측은 주요 간부 8명을 상대로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한편, 건물 앞에 2000년 1월부터 12월 사이 9개월간 집회신청을 하는 등 해고자들의 집회를 차단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해 왔다. 지난 97년에도 삼성측은 이천전기 노동자들이 고용승계 및 복직을 요구하며 그룹본관 앞에서 연일 집회를 갖자 바로 옆 별관에 싱가포르대사관을 유치해 노동자들의 집회를 원천봉쇄한 바 있다. 그 후 노동자들은 그룹본관 대신 계열사인 삼성생명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게 됐다.

한편, 지난해 7월에도 서울 세종로에 위치한 광화문빌딩은 정부종합청사와 청와대에 가까운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 건물 앞에서 대형집회들이 연일 개최되자 파격적인 임대조건을 제시, 브루나이 대사관을 빌딩 내로 입주시켜 건물 앞 집회를 금지토록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도형 변호사는 "대사관 앞 집회의 경우 외교상의 이익과 집회의 자유 사이의 비교 법익을 고려한 뒤 특정한 집회방법만을 제한하는 등 최소한도의 규제에 그쳐야 한다"며 "현행 집시법이 대사관 앞 집회를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