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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제네바 인권소식 ①> 인권을 기초로 평화를 복원하자

인권고등판무관 개막연설 요지

이번 호부터 매주 1회 제56차 유엔인권위원회 소식이 실립니다. 다음은 메리 로빈슨 인권고등 판무관의 개막 연설 요지로 이번 인권위원회에서 주목해야 할 주제들을 담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새로운 세기에 열리는 첫 회의는 20세기 인권위원회가 이뤄 온 성과를 평가하고 우리 앞에 놓인 주요한 도전들을 올바로 인식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제껏 국제인권규범은 눈에 띄게 진보했지만,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여전히 엄청나다. 인권을 기초로 전 세계에 평화를 복원하는 것, 모든 사람과 모든 나라가 존엄, 평등, 발전권을 향유하며 번영할 수 있는 경제 사회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첫째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평화의 문제다. 전쟁, 난민, 인권의 광범한 침해는 여전히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이루고 있다. 나는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인권의 전략을 만들어나가는데 관심을 기울이기를 인권위원회에 부탁한다.


인권을 통해 분쟁 예방

지난해 열린 제55차 인권위원회는 코소보 분쟁의 절정 시기와 때를 같이했다. 분쟁으로 인해 코소보-알바니아인들 뿐 아니라 세르비아인들 및 여러 소수 민족들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평화와 인권의 존중은 아직 코소보 땅에 이르지 못했다.

6월에 시에라 리온을 방문했을 때 나는 그곳 사람들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음을 목격했다. 아동을 학살하고 불구로 만드는 만행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에라 리온에서만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곳곳에서 민간인들의 기본적 인권이 노골적으로 부인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달 간 러시아 연방 내 체첸 지역의 인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접근의 제한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판별하기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민간인들이 분쟁의 결과로 비극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모든 인권 침해는 철저히 독립적으로 조사되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인권침해의 책임자들은 정의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사법처리에 이중잣대나, 성역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지난 9월에는 동티모르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인권위원회 특별회기가 열렸다. 그 후 나는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고, 다치고 또 집을 등질 수 밖에 없었던 동티모르인들의 상황을 직접 보고, 연대감을 심어주기 위해 동티모르를 방문했다. 현재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심각한 인권침해의 책임자들을 사법 처리하고 정의와 진실의 틀 안에서 진정한 화해를 촉진시키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효과적인 절차의 마련이다.


극빈 속 인권 없다

만약 우리가 위와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기만 하면 그때부터 인권의 문화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인가?

나는 극심한 빈곤 가운데서는 인권의 문화가 자랄 수 없다고 확신한다. 인권위원회 설립 당시 인권의 약속을 나누었던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앉아 있다면 어떤 인권 문제를 제기할까? 그들은 우리 세계의 불평등에 경악할 것이다. 수십 억의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얻지 못하고, 예방할 수 있는 질병으로 매일같이 수천 명의 아이들이 죽어 가는 이 세계를 보며 말이다. 극한적 빈곤을 뿌리뽑는 것은 우리가 직면한 인권의 중대한 과제다.

우선 우리는 발전권과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실현이 일차적으로 국가의 책임임을 명심해야 한다. 급속하게 세계화되는 사회에서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기업의 역할이 아무리 증가하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나아가 세계인권선언 28조에서 제시하듯, 인권과 기본적 자유가 획득될 수 있는 국제 사회질서가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위원회는 현재의 국제경제 질서가 인권의 실현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책임이 있다. 부국과 빈국 사이의 엄청난 차이는 기본적 인권의 문제이다.

인권운동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요구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나는 지금도 2년 전 위원회에서 인권운동가 선언이 채택될 당시의 느낌을 기억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다른 이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 활동가, 노동조합운동가, 언론인, 변호사의 죽음, 실종, 구금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매주 그들의 가족이나 동료들을 통해 듣게 된다. 인권활동가들은 2년 전의 약속이이 제대로 이행되기를 바라며 여러분들을 응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