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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박하사탕과 거짓말


99년에서 79년까지 20년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영화 <박하사탕>. 평단과 관객들의 반응은 이례적으로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 일색이다. 어떤 이는 '세계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라고 극찬했고, 또 다른 이들은 "나도 다시 돌아갈래"라거나, "영화를 보고 한동안 멍했다"고 한다. 이창동 감독은 사람들에게, 영화평론가 이효인의 지적 마따나 "네 삶을 네 손으로 찢어버려라, 더 이상 개처럼 살고 싶지 않다면"이라고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박하사탕>을 두고 "문발이(지식인)의 자기연민"이라거나, "2류 역사인식의 발로"라는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 영화를 평할 생각은 없다. 능력도 없다. 다만, '빛고을의 피'를 불러온 가해자들이 아직 처벌받지 않았다는 점, 그들이 스스로 죄과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는 점, 그러니까 '가해자'로 표상 했던 피해자의 망가진 삶을 우리 자신에게 투사하는 것 못지 않게, '역사의 이름'으로 가해자의 죄과를 물어야 하는 '의무'가 우리 앞에 남아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환기하고 싶을 뿐이다. 만장일치는 위험하다.

<박하사탕>을 상영하는 피카디리 극장 건너편 단성사에서 장선우 감독의 영화 <거짓말>을 만나는 건 묘한 느낌이다. 각설하고, <거짓말>을 검찰에 고발한 이들, 애초 등급보류 판정을 내렸던 '판관'들의 결정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영화가, 아웃사이더들의 어찌할 수 없는 슬픔과 쓸쓸함을 표현한 것이든, 일부의 비판처럼 예술을 빙자한 상업적 선정주의의 발로든, 상관없다. 알아서 볼 일이다. 중세의 엄숙주의가 우리를 구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나, 그 엄숙주의가 민주주의와 인권에 얼마나 해악을 미치는가 또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다름과 차이의 존중'을 외치며 '게릴라전'을 펼치는 듯 행동해온 장선우 감독에게 궁금한 점이 있다. 그는 왜 "<거짓말>이 포르노면 어떤데?"라고 반문하지 않는 것일까. 한국사회가 너무 보수적이라서? 난 한국사회가 도달한 표현의 자유의 수준을 가늠하고자 할 때 '국가보안법'과 '포르노'를 떠올린다. 누군가 포르노라는 낙인으로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으려 할 때 난 숨이 막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포르노를 표현의 자유 지대밖에 당연스레 놓는 태도에 쉽게 수긍할 수 없다. 물론 난 국가보안법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90년대를 통해 한국사회는 '미시정치'의 중요성을 배웠다. 사람들은 일쑤로 거대담론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하곤 하지만, 그 미시정치가 자동적으로 '거대담론'과 '거시정치'를 배제하는 것은 아닐 게다. <박하사탕>과 <거짓말>에서 난 '거시정치' 없는 '미시정치'를 본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느낌이 드는 게 내 눈이 어두운 탓이라면 좋으련만…


이제훈 (한겨레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