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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밀레니엄, 그리고 여의도 농성천막촌

텔레비전 방송과 신문을 보다보면 사람들은 이미 21세기, 세 번째 천년의 시간을 살기 시작한 것 같다. 한 텔레비전 방송사는 ‘새천년 특집’으로 36시간짜리 연속 생방송 프로그램도 준비중이란다. 뉴질랜드의 기스본이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작은 섬 얘기도 자주 듣게 된다. 지구 위에서 21세기의 첫 일출을 가장 먼저 맞이할 수 있는 곳이라나 뭐라나.

‘서기 0년’이 없었으니 실증적으로 따지자면 2000년 1월1일은 21세기의 첫날도, 새천년의 시작도 아니다. 축제 분위기에 딴죽 걸 생각은 없다. 20세기가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면 벌써부터 21세기와 새천년을 이야기하겠는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미래에 희망을 투사하겠다는 걸 탓할 수야 없지 않은가.

그러나 21세기를 한해 당겨 살려고 해봐야 달라지는 건 사실 없다. 잔고 한푼없는 예금통장에 거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사글세나 전셋집이 내집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래 전 마태가 전한대로 ‘하늘의 영광’뿐만 아니라 ‘땅 위의 평화’를 위해 지금-이곳 언 땅 위의 엄혹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무슨 소린지 감이 잘 오지 않는 사람들은 시간을 내어서 여의도 국회 앞에 들어선 ‘농성 천막촌’에 가보기 바란다. 그곳엔 ‘주 5일 근무제’와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요구하는 민주노총을 비롯해 오래도록 거리를 떠돌던 서럽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이 왜 한겹 비닐 천막과, 아스팔트의 한기를 막기 위해 바닥에 깐 스티로폴, 가스난로 따위에 의지해 칼바람에 맞서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자. 지금 그곳엔 전태일․박종철․이한열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시린 이들의 어머니․아버지들이 이태째 천막 농성중이고, 지난 6월22일 “몸이 너무 아파 병원 다니기가 고통스럽다. 가족들한테 미안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산재노동자 이상관(27)의 아버지 석수(64)씨가 152일째 농성중이다.

그러나 국회의사당의 국회의원들은 선거법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미 상임위를 통과한 민주화운동 보상법안과 의문사 진상규명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조차 하지 않고 있고, 정부가 올해 안에 법안을 만들기로 약속한 ‘주 5일 근무제’에 대해선 논의조차 않고 있다. 농성 천막촌 길 맞은편엔 한나라당사가 있고, 두 블록 동쪽엔 ‘금융1번지’의 기관차들인 수십여개의 증권사들의 고층건물이 즐비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한국자본주의의 상징인 모래섬 여의도 한복판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농성 천막촌에 가봐야 한다. 그리고 되물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쯤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