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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별기고> 또하나의 전쟁터 : 버마-태국 국경지대 난민캠프를 다녀와서

루벤에게

한국으로 돌아오는 즉시 안부를 전하려 했는데 다소 늦어졌습니다. 당신과 아쉬운 작별의 악수를 나누던 그날, “이제 돌아가면 나의 어린 조국을 재건하는 일에 기여하겠다”고 다짐하던 당신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신이 조국 동티모르와 어린 아들과 반가운 재회를 했을 무렵, 저는 버마-태국 국경지대에 위치한 난민캠프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참여했던 인권활동가 훈련프로그램이 끝난 직후, 때마침 태국 인권단체 FORUM-ASIA에서 버마난민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Pim이란 친구가 현장조사를 계획하고 있던 터라 동행한 것이었지요. 방콕에서 버스를 타고도 8시간을 달려 배글로(Bae Gloe)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대한 것이 아이들의 퀭한 눈망울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거세당한 자들의 절망감이 캠프 전역을 음울하게 휘감고 있다고 느낀 건 저의 착각이었을까요?

62년 네윈 장군이 이끄는 군부쿠데타 이후 36년째 군부의 철권통치가 계속되고 있는 버마의 민주화는 당신의 조국 동티모르의 독립만큼이나 국제사회와 인권운동의 오랜 과제였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조국이 독립을 향한 힘겨운 발걸음을 하나씩 내딛고 있는 지금까지도 버마는 여전히 캄캄한 터널속을 헤매고 있는 듯 합니다. 3년째 폐쇄된 대학, 낯선 이국땅에 유배되어 있는 수십만 난민의 존재가 버마의 현실을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으니까요.

버마의 민주화가 주요한 국제 인권이슈로 자리잡은 반면 버마내 소수민족들이 겪어온 인권침해의 역사는 국제적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나조차도 이곳 4만여 카렌족 난민들이 거주하는 배글로 캠프를 방문하기 전까지 이들의 문제를 거의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버마족 외에 카렌(Karen), 샨(Shan) 등 1백30여개에 달하는 소수민족이 버마의 또다른 구성원이라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었는지요.

이들 소수민족들은 버마군부에 의한 강제노역, 조직적 강간과 학살, 강제이주, 강제추방 등 무자비한 인권침해의 희생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버마군부가 소수민족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AIDS에 걸린 군인들을 동원, 이들 소수민족 여성들을 조직적으로 강간한다는 상상하기 힘든 추악한 소문까지 들렸습니다. 군부는 심지어 국경을 넘어서까지 소수민족 출신 난민들이 거주하는 캠프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주목받지 못한 또하나의 역사

버마군부의 오랜 탄압으로 군부에 대한 소수민족의 증오심은 버마인 전체에 대한 불신과 증오심으로 확대되고 있었습니다. 켐프에서 만난 카렌족 대부분이 확신에 찬 어조로 버마가 비록 민주화된다고 할지라도 자신들은 분리독립을 위해 투쟁하겠다고 말했습니다. 1년전 반란군을 도왔다는 혐의로 남편이 버마군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한 카렌여성은 아들이 크면 국경지대에서 분리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는 카렌해방군에 입대시키겠다고 했습니다. 증오가 또다른 증오를 낳고 폭력이 또다른 폭력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들이 분리독립을 쟁취한 후에라도 이웃나라 버마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세계평화를 위해 중요한 과제일텐데, 이 뿌리깊은 불신과 증오심을 어떻게 푸나 착잡한 심경을 가누기 힘들었습니다.

캠프내 상황도 예상보다 훨씬 더 열악했습니다. 나뭇잎으로 간신히 지붕을 이은 집들, 불결한 식수, 부족한 식량…. 전기마저 없어 해가 지면 촛불에 의지해 생활해야 합니다. 버마군대의 공격을 피해 최근 난민들이 새로 이주하고 있는 음피암(Um Piem)캠프는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짙은 안개 때문에 낮에도 태양을 볼 수 없는 데다 거센 바람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답니다. 해가 진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무려 12시간을 얇은 담요 한조각에 의지해 언제 바람에 날아갈지 모르는 지붕 아래서 밤을 지새워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유엔과 인도주의적 구호단체들이 지급한 식량을 빼돌려 다시 난민들에게 파는 부패의 사슬이 형성되어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지요.

캠프에 머무는 동안 또하나의 우울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태국정부가 국내에 거주하는 수십만 버마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체류자로 규정, 11월 3일까지 태국을 떠날 것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장을 발표한 것이지요. 군부의 강제노역이나 강제징집을 피해 버마를 떠나야 했던 이들 이주노동자들은 이제 태국의 감옥 아니면 목숨을 건 본국귀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답니다. 어이없게도 미얀마군부가 자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국경을 폐쇄했기 때문이지요. 버마와 태국을 잇는 강에 시체가 떠다닌다, 몇몇 여성이 국경을 넘다 군인에 의해 강간을 당했다, 오도가도 못하는 버마인들이 작은 섬에 갇혀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왔습니다.

그런 상황을 뒤로 하고 귀국길에 오르는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었겠지요. 그렇게 잠시나마 난민들의 고단한 삶의 현장을 함께 한 이후부터 버마의 군부독재가, 또 중심으로 편입되지 못한 혹은 스스로 중심을 창출하지 못한 소수민족의 절망적인 현실이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는 것을 느낍니다.

3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아시아지역 13개국의 참가자들이 국경과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뛰어넘어 우정을 나누었던 것처럼, 우리 아시아 민중들이 당면하고 있는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해방이 곧 나의 해방입니다.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