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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성명서> 국민에게 올바른 인권기구를!

날치기 당정협의를 규탄한다!

우리는 오늘 국민의 희망을 무참하게 짓밟은 날치기 당정협의를 규탄하기 위하여 이곳에 모였다.

21세기를 바라보며 어두운 과거와의 단절을 이루어냈다던 새 정권은 곰팡이처럼 피어나는 모략으로 얼룩져 있다. 저들은 그것을 ‘협의’라고 하고 ‘정치’라고 부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밀실공작’이라고 부른다. 아니 서슴없이 ‘모략’이라고 부른다. ‘인권 대통령’의 이른바 ‘민주개혁’은 지금 깊이 병들어가고 있다.

지난 22일 밤, 정부와 여당은 근 1년 동안이나 끌어온 국가인권위원회 설립논의에 기습적으로 마침표를 찍고 ‘최종합의’에 이르렀다. 이 ‘최종합의’를 ‘날치기’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주저함이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립논의의 공론화를 줄기차게 요구했던 우리 민간 인권단체들의 주장이 완벽하게 무시된 채 정치권의 밀실에서만 논의가 이루어지고 드디어 ‘최종합의’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그것은 ‘날치기’였으며, 취임한 지 1주일밖에 안되어 국가인권위원회가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국민회의 신임 정책위 의장이 ‘최종합의’의 당사자였다는 점에서 그것은 ‘날치기’였으며, 결코 인권침해를 받을 염려 없는 집권여당세력과 과거 인권유린의 원흉이었던 검찰세력이 ‘인권’을 들먹이며 야합을 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날치기’였으며, 그리고 결국 기형의 국가인권위원회를 낳았다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한 ‘날치기’였다. 도덕도 정치도의도 내팽개친 정치인들의 이와 같은 작태에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독립성과 실효성을 두 기둥으로 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은 우리가 진정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에 이르기 위하여 반드시 이루어야 할 필수적 과제이다. 바로 이와 같은 독립성과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국제기준에 맞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준)헌법기구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일차적으로 법무부는 이런 위상을 가져야 할 국가인권위원회를 자신의 산하기구로 만들기 위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왔으며, 그것이 여의치 않은 지경에 이르자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을 최대한 낮추기 위한 방해공작을 일삼아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법무부의 후퇴를 ‘양보’라고 부르는 언론의 몰지각함에 우리는 서글픔과 허탈감을 금할 수가 없다. 오랫동안 법무부 안에 맞섰던 김원길 정책위 의장의 경질을 기다렸다는 듯이 타결된 이번 당정협의의 결과는 이와 같은 법무부의 목표가 대체로 관철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거기에는 법무부의 방해공작으로 인하여 만신창이가 된 나약한 국가인권위원회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예산 신청에 있어서 법무부의 간여를 배제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법무부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당정의 ‘최종합의’에 의한 국가인권위원회 안은 여전히 법무부안의 골격을 따르고 있음이 명백하다. 인권위의 기본틀을 결정하는 과정을 법무부 장관이 틀어쥐는 국가인권위원회, 그 결정사항을 법무부 장관에게 통보해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침해사건에 대하여 ‘시정권고와 의견표명권’ 밖에 갖지 못하는 국가인권위원회, 공무원인 그 자체의 직원을 갖지 못하고 ‘뜨네기 직원’만으로 구성된 국가인권위원회, 형법으로도 다룰 수 있는 9가지의 인권침해행위 밖에 조사할 수 없는 국가인권위원회…. 도대체 이런 나약한 (준)헌법기구가 어느 세상에 존재한단 말인가! 어째서 이런 국가인권위원회가 “국제적 기준”에 맞다는 말인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모든 중요한 정책은 널리 국민에게 홍보되고 공개된 토론과정을 수없이 거치면서 수립되어야 한다. 우리는 바로 이 점을 누누이 정치권에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 설립논의는 철저히 공개를 거부한 정부 여당과 법무부 사이의 밀실협상으로 진행되었다. 최근에 이르러 신임 장영철 정책위 의장은 취임직후 우리의 거듭된 면담요청을 묵살하면서 기습적인 ‘최종합의’를 이루기 위하여 법무부와의 밀실협의를 진행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의 정치인들이 도덕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민간 인권단체를 철저히 따돌림으로써 성립시킨 국가인권위원회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국민의 눈을 피해가며 정치인의 야합으로 만들어진 국가인권위원회가 과연 정치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자유로운” 기구가 될 수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 앞장서서 국가인권위원회 설립과정에 개입하는 나라는 이제까지 한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번 당정협의에서의 ‘최종합의’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런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민의 냉소와 체념의 대상이 될지언정 결코 희망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3월 22일의 날치기 당정협의의 결과는 철회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이 논의를 모든 국민에게 공개함으로써 진정 국민을 위한 국가인권위원회를 창설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이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고난을 견디며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1999. 3. 26

인권법 제정 및 국가인권기구 설치 민간단체 공동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