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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판결문 발췌> 시위금지통고처분 취소 판결

“교통지장, 시위금지 사유 안 돼”

지난 12월 29일 서울고등법원은 ‘고용․실업대책과 재벌개혁 및 IMF대응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가 종로경찰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시위금지통고처분취소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경찰이 자의적으로 제한해 온 관행에 제동을 건 의미있는 판결이다<편집자주>

․사건 : 98누11290 시위금지통고처분 취소
․원고 : 고용․실업대책과 재벌개혁 및 IMF대응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소송대리인 : 시민종합법률사무소(담당변호사 윤종현, 김선수, 김도형)
․피고 : 서울시 종로경찰서장
․주문 : 1. 피고가 1997. 9. 11. 원고에 대해 한 시위금지통고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중략)


다. 판단


(1)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에게 집회․결사의 자유가 있음을 선언하고 있고, 제2항에서는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함을 명백히 하고 있다. 한편 법 제6조 제1항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주최하고자 하는 자로 하여금 관할 경찰서장에게 그에 관한 소정의 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 취지는 신고를 받은 관할 경찰서장이 그 신고에 의해 옥외집회 또는 시위의 성격과 규모 등을 미리 파악함으로써 적법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보호하는 한편 그로 인한 공공의 안녕 질서를 함께 유지하기 위한 사전조치를 마련하고자 함에 있는 것이다(대법원 1990. 8. 14. 선고 90도870 판결 참조). 또한 법 제8조 제1항은 신고서의 기재 사항에 미비한 점이 보완되지 않는 경우 관할 경찰서장이 집회 또는 시위의 금지를 통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금지통고가 헌법에서 금하고 있는 사전허가가 되지 않기 위하여는 경찰서장이 집회의 실질적 내용에까지 들어가 그 위법여부를 판단해 허, 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할 것이다.

(중략)그러나 피고가 지적하고 있는 사항 중 집회장소의 수용인원이 제한되어 예정된 행진이 신고시간보다 먼저 시작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을 기재해야 한다거나 질서유지인을 참가 단체별로 분류 기재해야 한다는 점은 법 제6조 제1항에서 요구하는 신고사항에 포함되지 않으며 집회의 내용에 관계되는 부분이므로 이를 들어 신고서의 보완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집회의 신고의무자는 집회 주최자이지만 법 제2조 제3호에 따르면 주최자는 주관자를 따로 두어 집회 또는 시위의 실행을 맡아 관리하도록 위임할 수 있으므로, 위임받은 범위 안에서는 주관자가 신고서를 제출할 수 있는데, (중략)원고의 공동대표 중 한 사람인 권영길은 위 시위 신고서 제출 권한을 이동신에게 위임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위 신고서를 이동신이 제출했고 신고서 기재사항을 보완하면서 그 위임장을 원고 집행위원장 박석운이 작성했다 하여 위 신고서 제출이나 그 보완이 부적법하다 볼 수도 없다.(중략)


(2) 한편 (중략)일반인들의 통행이 잦은 곳에서 다수의 사람이 모여서 하는 시위는 그 자체가 도로교통에 장애를 주게 되어 다른 사람들의 이전의 자유와 공공질서를 침해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제한이 필요하며, 이에 따라 법 제12조 제1항은 교통소통을 위해 필요한 때에는 주요도시 주요도로에서의 시위를 금지하거나 교통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사건에 있어 원고는 서울특별시의 교통요충지로서 평소 일반인의 통행이 매우 빈번한 정부종합청사 인근 도로를 중심으로 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하고 있는데, 시위참가예정인원이 3,000명에 달하고, 위 광화문 빌딩 앞 광장에는 약 1,500명만이 수용될 수 있어, 시위 참가인원이 1,200명이 넘을 때부터 행진시위를 시작하면 시위참가자들이 정부종합청사를 4열로 포위하고 그 일대 보도를 점거하게 되므로, 위 시위가 실제로 진행될 경우 정부 종합청사를 출입하거나 인근 도로를 통행하는 보행자나 차량의 교통소통에 심각한 지장이 있을 것임은 명백하다. 따라서 피고로서는 교통소통의 필요를 위해 위 시위를 금지하거나 교통질서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다 할 것이다. (중략)


(3) 결국 피고는 법 제12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원고가 계획하고 있는 시위를 금지하거나 일정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다 할 것인데, 이때 그 시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할 것인지 아니면 일정한 조건을 붙여 제한하는데 그칠 것인지 여부는 피고의 재량에 속한다 할 것이다. 그런데 집회 및 시위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의 집단적인 형태로서 집단적인 의사표현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자유민주국가에 있어서 국민의 정치적․사회적 의사형성과정에 효과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민주정치의 실현에 매우 중요한 기본권이다(위 헌법재판소 1994. 4. 28자 91헌바14 결정 참조). 따라서 그 제한은 공공의 안녕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범위 안에서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는데, 이 사건에 있어 원고가 계획하고 있는 시위가 교통소통에 상당한 지장을 줄 우려가 있음은 앞서 본 바와 같지만, 원활한 교통소통을 위해서는 참가인원 및 행진노선과 행진방법의 제한 등 적절한 조건을 부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할 것이며, 나아가 원천적으로 위 시위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단순히 교통소통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위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으로서 재량권의 한계를 넘은 위법한 처분이라 할 것이다.
(생략)

1998. 12. 29.

재판장 판사 이종욱 판사 강일원 판사 유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