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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발제요약> 민변 창립 10주년 기념 심포지엄


(1) '진보'를 잃은 시대에 서서

이제 사람들은 과거처럼 '진보'와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계(視界) 속에 내일이 들어오지 않는 혼돈 속에서 과거에 열정적으로 진보와 희망을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불안에 떨면서 헤매고 있다. 그들은 혹은 바닥 모를 허무와 비관의 늪으로 빠져들어 가고, 혹은 영리한 기회주의자가 되어 거리낌없이 자신에 대한 지적 배신을 감행하고, 혹은 씩씩한 꿈을 버리고 왜소한 일상 속으로 후퇴한다.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확실히 현대 세계는 혼미상태에 있는 것이다.

인권운동이 '과학'과 특정한 '역사법칙'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해야 하는 운동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인간의 존엄을 실현하기 위한 운동이며, 자본주의 성립과 동시에 인간을 소외된 상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존재해온 운동이라는 점에서 흔들림 없는 진보운동이(어야 한)다.


(2) 지금, 우리의 인권은? 인권운동은?


우리의 인권상황 개관

현 시기 우리의 인권상황은 한마디로 매우 암담하다. 50년만의 정권교체, 즉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권의 수호자'(사실은 '인권의 희생자'이다) 김대중 씨가 이끄는 새 정권이 출범했다는 긍정적인 요인은 있다. 그러나 김대중 씨가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내건, 국민인권기구 설치 등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인권공약에도 불구하고 그와 특히 그의 동맹자(자민련)의 보수성향 내지 반동성향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공약들이 과연 효과적으로 실현되는 것인지에 대하여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의 인권상황을 암담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인권대통령'의 탄생이라는 다소의 긍정적 요인을 멀리 압도하는 경제위기이다. IMF 관리체제 하에서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각종 규제완화를 통한 자유시장화 정책은 벌써 우리 민중의 생존권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5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인권 대통령'이 국제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인권 억압 대통령'으로 변신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의 도래가 예견되고도 남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인권운동 상황 개관

<여성, 장애인, 북한동포돕기, 노동' '인권교육' '대학생 인권운동과 불심검문 거부운동' '국가보안법, 과거청산운동'에 대한 발제 지면상 생략>- 편집자주


▶ 시민의 작은 권리찾기 운동 혹은 탈 정치의 '인권'

작은 권리찾기 운동은, 그 운동 자체의 의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권운동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성공도 아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참여연대가 자랑스럽게 내놓는 '대표적 사례'라는 것은 전혀 '인권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난시청 지역 시청료 내야하나? 화장품에 유통기한이 없다. 등등. 그 '대표적 사례' 중에는 예를 들어 노상검문 문제나 유치장에서의 불편과 터무니없이 짧은 구치소 면회시간, 혹은 민방위훈련에의 강제동원과 같은 그야말로 '작은 권리'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무수히 존재하는 국민의 인간적 요구 중에서 특정한 것들만이 '인권' 혹은 '기본권'으로서 특수하게 법적 표현형태를 부여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권'이 국가권력과의 관계에 있어 문제되는 일종의 대항적 개념인 까닭이다.

결국 작은 권리찾기 운동은 90년대 이후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에 편승, 영합하는 기회주의적 운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상업매체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시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증폭시키는 기능을 하는 측면을 가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 그 밖의 문제들

우리의 인권운동 상황은 매우 염려스럽다. 우선 우리에게 남의 인권을 위하여 '일해주고 있다'는 고답적인 자세가 없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어느 때부터인지 우리의 인권운동은 인권을 위하여 스스로 핍박과 고통을 당하면서 보편적인 '인간의 표시'를 세워나간다는 박력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인권운동가 일반이 그렇지만 특히 젊은 변호사들이 그런 기백을 잃고 있다고 생각한다. 70-80년대의 인권변호사 몇몇 맹장들은 민중들과 함께 핍박을 받으면서 '인간'임을 증언했다. 혹 시대가 변하여 핍박받을 거리가 없어졌다고 할지 모르나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 많은 인권 변호사들은 판사에게 '찍히는' 일을 꺼리고 혹은 비웃음을 살 것을 꺼리면서 정면으로 돌파하려 하지 않는다.


(3)-생략


(4) 21세기를 바라보는 인권운동

무엇보다도 인권운동은 현 시기 대중의 고통에 밀착해야 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문제로 돌아가야 하며, 대중의 진정한 고통의 원인을 증언하면서 현실의 구조를 넘어야 할 운동 일반의 사명을 확실히 자신의 사명으로 인식하고 그런 운동에 적합한 사업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에서 나오는 계획적인 인권운동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즉자적으로 양지를 찾아가는 운동형태를 과감히 청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아주 고도의 예지를 가진 현인이 아니라면 우리는 세계에 대한 대단히 과학적인 인식을 가지거나 철저히 인간해방·민중해방의 가치관을 가지고 우리의 인권운동의 방향을 잡아 나갈 수밖에 없다.

이 혼미와 허무의 시대 속에서 우리의 인권운동은 '진보'를 뚜렷이 자각하는 운동으로 재편성됨으로써 비틀린 '인권' 개념에 매달리는 '자본'을 위한 인권운동과 투쟁하는 한편, 진보적 인권운동의 새로운 거대 담론을 만들어내면서 진정 인간의 존엄 실현과 인간해방을 위해 복무하는 운동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서준식 (인권운동사랑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