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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세계의 인권 <16> 인권교육

“인권교육의 대기 속에서 인권의 날개를”


국제화 시대의 개막을 밤낮으로 전광판에 내보내는 어느 나라에서는 전국적인 대학입학 시험에 무슨 과목을 넣느냐 마느냐가 교육을 고민하는 출발점이고, 과외를 풀어주느냐 마느냐가 교육의 기회에 대한 고려이다. 청소년을 번쩍 들어서 뒤집어 흔들며 아이들의 죄상과 도덕성의 타락을 털어 내는 것이 청소년 선도 교육이고, 한총련 탈퇴 강요를 통해 집회와 결사의 자유라는 기본권의 생생한 학습장을 조성해 주는 것도 빼놓아선 안될 일이다.

여기에 ‘인권교육’이란 걸 들이밀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인권교육! 그래 그거야! 도덕교육이 강화돼야지, 남에게 해 끼치지 않는 법 착실한 시민이 되는 법을 배워야돼” 라는 맞장구가 나오지는 않을까? “세상을 바꾸지 않고서야 무슨 인권교육이 되겠어”라는 반응은 어떨까? 인권교육에 대한 이해와 요구의 수준이 매우 다양한 가운데, 94년 12월 유엔총회의 결의안 49/184를 통해 ‘유엔인권교육 10년(1995-2001)’이 선포됨으로써 인권교육의 시도는 국제사회의 기정사실이 되었다.


유엔 인권교육 10년

훨씬 이전인 45년부터 인권교육에 대한 언급은 유엔헌장을 비롯한 다양한 국제문서에 등장하여 왔다. 이들 문서는 ‘인권에 대한 존중을 증진시키고 고무시키기 위한 노력’을 당사국에 부과함으로써 인권에 대해 교육하고 훈련할 국가의 책임을 만들어냈다. 최근의 예로는 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서 채택한 선언과 행동계획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인권교육과 훈련, 대중홍보야말로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사회관계와 상호이해, 관용과 평화를 증진시키고 성취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인격의 발달과 인권에 대한 존중을 강화시킬 수 있는 직접적인 교육을 실시할 것을 각국 정부에 촉구하였다. 여기에는 인권과 인도주의법 등을 다루는 교과목이 모든 교육기관의 교육내용에 포함되야 한다는 요구사항이 담겨있다.

이러한 세계인권대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듬해에 결실을 본 것이 ‘유엔 인권교육 10년’의 선포인 것이고, 유엔은 ‘유엔 인권교육 10년’의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세우고 그 주요목표로서 1)인권교육의 욕구를 평가하고 전략을 세우는 일 2)국제적, 지역적, 전국적, 지방적 차원에서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강화하는 일 3)인권교육 교재를 상호협력 속에서 개발하는 일 4)대중매체의 역할을 강화하는 일 5)세계인권선언을 전파하는 일 등을 내걸었다.

위의 선언과 행동계획을 뒤따라 여러 지역에서는 인권교육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고 인권교육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교재가 선보여 왔다. 개중에는 산수, 지리, 역사 등 학교의 각 교과목과 결합시킨 내용도 있고, 컴퓨터 게임이나 놀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재미있는 방법들도 많다. 이런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일부 지역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고 그에 대한 호기심과 따라 배우려는 노력이 적지 않은 한편, ‘인권교육’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적 장애물에 대한 거론도 지나칠 수가 없다. 국제사회가 기정사실화 시킨 수많은 ‘종이 위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인권교육은 과연 무엇이며 무엇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는 물음에 시원스럽게 답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종이 위의 약속

인권교육의 불가능성과 동시에 가능성을 내포한 걸림돌을 감지한 사람들은 이런 질문들을 제기한다.

인권교육은 인권의 실현을 방해해온 역사적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는가? 인권교육은 ‘개발’의 의미와 개발을 통해 누가 이익을 얻는가에 대해 문제제기할 자격이 있지 않은가?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개발을 주도하는 사회·경제 세력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는가? 세계경제의 지구화에 시급히 강조점을 두어야 하지 않는가, 국제사회가 오로지 종이에서만 약속한 것으로 보이는 ‘지속가능하고 인간 중심적인 개발’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에 강조점을 두고 이 점을 전달하는 것이 인권교육이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가? 세계무역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5백여 다국적 기업, 국제재정기구, 무수한 원조와 투자 기관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개별 국가의 인권침해에 대한 관심에 비해 너무 오랫동안 간과되온 것은 아닌가?

인권에 대해 배우는 것 자체가 중요한 권리라고 한다면, 취약계층을 더욱 주변부화 시킬 뿐 아니라 극소수를 제외한 모두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당연히 인권교육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다양한 사회세력과 권력관계를 읽어내고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을 포함하는 속에서 인권교육이 접근돼야만 한다는 주장은 이 속에서 제기된다.


인권교육의 출발점

우리는 읽고 쓰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으로 살 수 있는 법,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인권의 날개를 펴고 날 수 있는 것은 인권교육의 대기 속에서만이 가능하다는 걸 우리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충분히 깨닫고 있지 않은가.

【류은숙 인권교육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