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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움틈] 인권교육, 더 낮은 곳으로의 비행

소외된 이들을 찾아나선 인권교육의 발걸음들

인권교육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더 낮은 곳으로, 더 소외된 인권의 주체들이 있는 현장으로 '찾아가는 인권교육'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것. 사회적 약자·소수자들 중에서도 소수자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에 더더욱 인권교육의 기회를 접하기 힘들었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인권교육의 실험들은 한국 인권교육의 역사에서 현장성과 진보성 강화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새기고 있다.


찾아가는 인권교육

지난 10여년 동안 인권교육의 발전을 추동해 온 인권운동진영은 그동안 교사·활동가 등 인권교육가를 양성하고 인권교육 프로그램과 지침서를 개발하는 데 한정된 역량을 쏟아부어왔다. 덕분에 캠프나 초·중등학교에서 활용가능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어느 수준까지는 개발되었고, 인권교육의 산파 구실을 떠맡은 교사들의 수와 역량도 커져가고 있다.

이렇게 학교 인권교육이 기름진 텃밭으로 일구어져 오는 동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권의 주체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 스스로 인권침해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인권교육은 최근까지도 불모지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와 청소년을 인권캠프나 인권학교 등 열려진 교육의 장으로 초대하여 그들의 인권역량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그러한 교육기회에 접근할 수 있는 이들은 그야말로 '선택받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지역 빈곤아동, 정신장애인, 소년원 수용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이 있는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는 인권교육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인권교육의 불모지에 새로운 싹이 트고 있다.

억압을 밀어내는 인권교육의 힘 [출처] 인권운동사랑방 인권교육실

▲ 억압을 밀어내는 인권교육의 힘 [출처] 인권운동사랑방 인권교육실



빈곤아동, 정신장애인, 소년원 수용자들과의 만남

먼저 인권운동사랑방은 2003년 하반기부터 지역 공부방에 둥지를 틀고 빈곤아동의 삶에 밀착한 인권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공부방 교사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을 병행함으로써 공부방과 가족 공간을 인권적으로 재구성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빈곤지역 아동의 경우, 사회권 침해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인 동시에 불안정한 가족환경과 아동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또다른 인권침해에 쉽게 노출되어 왔다. 이러한 조건을 고려하여 공부방 인권교육은 인권의 일반적인 가치는 물론 사회권, 가족과 인권에 대한 의식을 높이고 다른 사회적 약자·소수자들과 연대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노력이 알려지면서 다른 공부방들도 인권교육 워크숍, 인권소모임 구성 등을 통해 인권교육을 도입하기 위한 모색을 시작했다. 서울지역공부방연합회 인권소모임은 인권운동사랑방과 협력 하에 올해 '공부방 생활 속 인권지침' 개발, 공부방 인권교육과정 개발 등의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안산노동인권센터, 전북평화인권연대 등 지역 인권단체들도 올해부터 공부방 인권교육에 나설 계획이어서 빈곤지역 아동을 위한 인권교육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다산인권센터는 수원시 정신보건센터를 찾아가 이곳을 이용하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을 대상으로 2년째 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90%가 정신분열증 환자인 이들은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소외, 멸시, 억압받아왔고, 인권으로부터 배제된 삶을 살아왔다. 매주 1회씩 12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이 교육은 정신장애인으로서 받아왔던 상처와 억압이 당연히 감내했어야 하는 인고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되어야 할 인권의 문제임을 긍정해 줌으로써 무엇보다 그들이 자기 존재를 긍정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또한 교육의 과정을 통해 정신장애인들이 인권침해의 경험들을 이미 인권의 문제로서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교육하는 이들에게도 '정신장애인은 인권에 대해 무지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지난 12일부터 다산인권센터, 인권운동사랑방, 평화인권연대는 안양소년원(정식 명칭은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에 수용된 청소녀들을 위한 인권교육을 시작했다. 절도, 폭력, 성매매 피해·알선 등의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 청소녀들은 학교를 그만두었거나 따뜻한 보살핌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지 못해 소년원을 나가서도 또다시 열악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소년원에 오기까지, 그리고 소년원에 수용되어 있는 동안 겪었을 인권침해의 경험도 이들에게는 또 다른 상처로 남아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이번 교육은 여성, 청소년, 형사사법절차, 폭력과 위계, 가족, 노동 등을 주제로 4월 한달 동안 16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아직 교육의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성처투성이의 삶 속에서 자신이 왜 소중한지를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 어린 여성들이 인권의 주체인 사람이자 여성으로서 자아존중감을 회복하고 인권을 존중받고 존중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인권교육이 맞닥뜨린 새로운 도전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는 인권교육은 이제 막 출발단계에 서 있지만 소중한 결실들을 일구어내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권교육이 인권 의식과 감수성 고양을 목표로 한 일반론 수준에 머물러왔다면, 이들 새로운 실험들은 인권교육의 대상이 가진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소외된 이들의 삶에 천착한 구체적인 인권교육의 내용과 방법론을 개척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침해에 노출되기 쉽고 그만큼 인권교육을 받을 권리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과의 만남을 시도함으로써 인권교육의 현장성과 진보성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소외된 이들을 찾아나선 인권교육이 맞닥뜨려야 했던 도전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그동안의 인권교육은 인지중심적 프로그램들에 기대어 왔다. 그만큼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가난한 지역 주민들, 일반인의 발달 정도에 비추어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정신장애인들이 인권의 의미와 가치에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이끌어줄 교육방법론이 부족함을 뼈아프게 인식해야 했다. 소외되고 억압받아온 이들의 경험과 상처를 소중한 교육의 자원으로 초대하고 그들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억압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는 힘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이끌 프로그램도 밑바닥상태에서 고민을 해야 했다. 나아가 이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 즉 정신보건센터 직원이나 수용시설 직원, 그들의 가족들을 지지자들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인권교육의 내용과 방법론도 미개척 상태로 남아있다. 미처 다 만들지 못한 신을 신고 인권교육은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셈이다.

새 신을 완성하는 과제와 함께 아직까지도 인권교육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수없이 많은 사회적 약자·소수자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준비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있다. 인권교육의 기회로부터 배제되어 있기에 그들의 취약성은 유지되거나 더욱 심화될 것이다.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의 삶과 이미 함께하고 있는 이들이 인권교육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