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인권과 통일의 원칙을 토론하는 장이 되어야

요즘 방송사와 신문사가 연이어 대선주자 초청 토론회를 개최하느라 부산한 모습이다. 여당측 대선후보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각 언론사들이 대선주자 토론회를 경쟁적으로 마련하는 것을 보니 92년 대선 당시와 비교할 때 격세지감이 들기도 한다. 현재 대선주자 토론회는 각 주자의 이력과 신상을 중심으로 약점 들춰내기와 흠집내기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비전과 정책을 중심으로 토론회를 진행시켜야 마땅하다는 주장과 요구도 적지 않지만 이 경우 후보들에게는 더욱 쉬운 토론회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선주자 각각을 놓고 밋밋하게 문답식으로 진행하는 현재의 형식상, 정책과 미래를 중심으로 토론회를 진행하다가는 과거의 흠집이나 실책 추궁에서 비롯되는 그나마의 긴장감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가 비전과 국정 현안을 놓고 전개되는 여야간의 치열한 정책대결식 토론회는 아무래도 여야의 최종 대선주자가 선정된 후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비전과 정책이 뒷전인 토론회

그럼에도 작금의 대선주자 토론회는 역시 문제가 많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선 패널리스트의 질문이 너무도 흥미 위주의 시사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그 결과 답변도 뻔하다. 예컨대 여당의 경선후보들에 대해서는 항상 후보간 합종연횡에 대한 질문들이 가장 많이 던져진다. 답변은 언제나 ‘지금으로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 한가지뿐이다. 하기야 달리 어떤 답변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과거의 이력상 약점을 들어 흠집내기를 시도하는 경우에도 그것 자체가 목표가 아닌 이상에야 반드시 규범적 목표와 시사점이 뚜렷해야 하지만 많은 패널리스트들은 이 점에서 불분명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취한다. 이렇게 되면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책임규명 논의 대신 개인의 윤리적 책임문제만이 전면에 부상하기 쉽다. 그 결과 기껏해야 ‘과거에 이러저러한 입장이나 견해를 바꾼 사실이 있느냐’는 식의 단순질문이 행세하게 된다. 간혹 정책질문이 제기되기도 하는데, 통계수치 암기력 테스트로 골탕을 먹이려는 것인지 국정의 최고책임자에게 필요한 폭넓은 사회적 인식이 있는지를 테스트하려는 것인지가 뚜렷치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패널리스트의 문제점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명색이 대선주자라는 이들이 민주화나 사회정의를 위해 떳떳하게 내놓을만한 업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특히 여권후보들의 경우 그저 권력지분 유지를 위해 나선 듯하고 이른바 김심을 향해 발언하는 모습이 너무나 역력하다. 정발협의 동정과 청와대의 풍향에 온 신경을 쏟다보니 책임있는 국정수습방안을 밝히거나 개혁의 비전과 정책, 그리고 전략을 소신있게 내놓는 따위의 현상은 볼 수 없다. 그저 추상적인 좋은 말로 모든 것을 얼버무리며 물밑으로는 구태를 계속할 뿐이다. 그 결과 국민들은 현 정권과 지지기반이나 득표전략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는 이른바 신한국 구룡들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주기만 하면 만사가 잘 풀릴 것이라니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예컨대 국민들은 현 정권의 개혁이 ‘방향은 옳았는데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여권 경선후보들로부터 듣고 있지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현 정권은 개혁을 어떻게 추진하였길래 이런 꼬락서니를 하게 되었는지, 다른 개혁경로로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현 정권은 어째서 그러한 전략을 선택할 수 없었는지, 어떤 여건이 갖춰져야 그러한 방법으로 개혁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인지 등의 핵심문제들이 좀처럼 개진되거나 추궁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화를 위한 업적은 무엇인가

특히 다음 대통령의 임기중 실질적 중요성을 더해갈 인권과 통일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패널리스트가 거의 없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단골메뉴인 노동법만 해도 언제나 날치기라는 절차적 흠을 문제 삼았을 뿐 그 내용에 대한 문제 제기는 거의 없었다. 더욱이 같은 날 날치기 처리된 끝에 곧 소집될 임시국회의 제1의제로 이미 올라있는 안기부법에 대해서는 그나마의 언급도 없었다. 반인권적인 지역차별문제나 외국인노동자문제, 그리고 사회복지문제도 마찬가지 신세다. 더욱이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북한난민과 망명자 등의 인권문제나 통일 이후의 북한지도층 처리문제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토론은 거의 없다. 드물게 논의되는 경우에도 퀘퀘묵은 안보논리와 경제논리의 반복만이 들릴 뿐이었다.


인권․통일단체들이 해야할 바

한마디로 적지 않은 대선주자 토론회가 이미 진행되었지만 미래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형성은커녕 과거에 대한 정치적 반성의 효과마저 전무한 실정이다. 작금의 텔레비전 토론회가 전파의 낭비라는 비판을 피하고 정치적 각성과 토론의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통일과 인권을 축으로 각 후보들의 비전과 지혜, 인품과 개성을 엿볼 수 있는 날카로운 질문들을 인권단체와 통일단체들이 다수 개발하여 언론사에 보내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곽노현 (방송대 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