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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재벌을 도마에 올리자

민노총·민교협, “삼성 변칙세습 추궁”


온 국민의 시선이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정국 등으로 쏠려있는 틈을 타 슬그머니 진행된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삼성그룹이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씨에 대한 3세 승계작업을 변칙적으로 진행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의 부정한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삼성그룹의 변칙세습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이재용 씨는 아버지로부터 95년 12월 61억원을 증여 받는다. 이 때 증여세로 16억원을 내고 남은 돈으로 에스원과 엔지니어링 주식을 구입한다. 두 회사는 곧 상장되었으며, 이 씨는 주식을 처분해 총 5백63억원의 자금을 만든다. 이어 이 씨는 그 돈으로 중앙개발의 사모전환사채(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채)를 96억원 어치, 삼성전자의 사모사채를 4백50억원 어치 사고 제일기획의 전환사채도 산다. 그 결과 이재용 씨는 현재 중앙개발의 지분 62.5%, 삼성전자의 지분 0.97%, 제일기획 지분 35.3%를 취득하게 되었다.

중앙개발의 순자산가는 1조원이 넘는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어, 전환사채 형식으로 이 씨가 인수한 자산액은 최소 6천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최초 61억의 재산을 증여받아 세금 16억원만을 낸 채 이 씨는 수천억원의 돈을 고스란히 품안에 넣었고, 동시에 삼성그룹에 대한 승계작업을 완료한 것이다.


61억이 순식간에 6천억으로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 있는 삼성그룹 세습과정은 30일 민주노총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주최로 열린 ‘재벌의 족벌경영과 변칙세습(삼성의 3세 승계 과정을 중심으로)’에 대한 정책토론회 장에서 공식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날 토론회에서 곽노현(방송대 법학과) 교수는 “이번 삼성의 변칙세습 과정은 현행 회사법에 의하더라도 그 자체로 무효”라고 밝혔다. 그것은 중앙개발이 전환사채 발행의 본 목적인 금융조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이재용 씨를 제1주주로 앉히는 데 목적을 두고 전환사채를 발행했기 때문이며, 또한 수천억원의 값어치가 있는 전환사채를 1백억원도 못되는 가격으로 발행하는 등 현저하게 불공정한 조건으로 발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곽 교수는 “삼성그룹의 변칙 증여에 대한 사법적 대응이 가능하다”며 그 방법으로는 전환사채발행무효소송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소송자격을 가진 중앙개발의 주주가 대부분 계열사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소송제기의 한계가 있으며, 제소기간이 오는 6월이면 끝난다는 점도 소송을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다.



정치권․언론, 쥐죽은 듯 침묵

정작 문제는 삼성을 비롯한 우리나라 재벌의 변칙세습과 족벌경영에 대해 언론과 정치권이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에 있다는 지적이다. 곽 교수는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어 재벌승계과정의 실태와 수법을 전부 조사하고 그에 따른 대응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자 국회’라는 말이 드러내듯 현실적으로 정치권이 재벌을 통제하지 못하고, 막강한 재벌의 로비력에 의해 언론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사회운동을 통해 이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