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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세계의 인권 <13> 가정

물러앉은 아버지, 위기의 가정

가정의 달이다. 주머니가 헐거워짐을 느끼는 많은 가정의 가장들을 5월의 태양이 뜨겁게 쏘아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비어있는 것은 무엇일까?

유엔아동기금은 그간 가족복지의 연구가 어머니와 아동에만 초점을 맞춰왔다고 지적하며 95년, 가정내의 남성과 아버지의 역할을 짚어보는 회의를 가졌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조사·보고된 가정의 문제를 몇 가지 짚어보자.


부인의 자녀양육시간 남편의 4배

먼저, 자녀양육의 측면에서 보면, 세계적으로 남성이 자녀를 보살피는 시간은 여성의 1/4에도 못 미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자녀의 숫자가 증가할 수록 어머니가 양육에 쏟는 시간은 늘어난 반면 아버지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쏟는 시간에서뿐만 아니라 지출성향에서도 이런 차이는 나타난다. 여성이 약 7명의 자녀를 출산하는 다산(多産)사회에서는 15세이상 연령에 해당하는 사람 각자가 1명의 자녀에 대한 경제적 부양을 책임지고 자녀를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성적 불평등이 지배적인 현 상황 속에서 남성은 전형적으로 자기 수입의 30%를 개인적인 여가를 위해 사용하는 반면, 성인여성은 1.3명의 자녀를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하고 2.3명의 자녀를 자기 몸으로 직접 보살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양육에 있어 ‘아버지의 부재’라는 장벽은 남성에게는 아이를 보살피는 기술이나 경험이 없다는 것이지만 양육의 기술이 어머니에게만 제한되어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또 다른 주요한 장벽은 ‘가난’이다. 가난한 가정일수록 아버지가 가정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녀에 대해 기여하는 것은 경제적인 부분이고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할 때는 자녀를 보살피는 어떤 행위도 아무런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기대이고 인식이기 때문이다.


가정내 성평등

둘째, 가정내 성평등은 성폭력이나 조혼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대개는 여성이 알고 있는 누군가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것이 각 지역마다 일치되는 연구결과이다.

페루에서 12-16세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된 여성의 90%가 강간에 의한 것이었으며 다수가 아버지, 양아버지, 가까운 친척에게 강간당했다. 미국에서는 병원의 응급실을 찾는 여성의 22-35%가 학대와 관련되어 있다. 캐나다에서는 결혼경력이 있는 여성의 29%가 전남편이나 현남편에게 신체적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같은 가정폭력은 자녀에게 물론 영향을 끼친다. 인도의 한 연구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발생한 가정의 아동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상당히 적은 열량의 음식을 섭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폭력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폭력의 중요한 동력중 하나는 여성이 가정 밖에서 역할을 갖게 됨에 따라 남성이 통제의 상실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이 벌어들이는 돈이 남성이 버는 양에 비해 증가함에 따라 여성에 대한 폭력도 증가한다고 한다.

이의 해결을 위한 그간의 초점은 성적평등과 여성의 의사결정권 등의 강화에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중요한 것은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대한 관심과 성평등에 대한 관심이 일치되야 한다는 지적이다. 남성이 자녀와 친밀할 수 있고, 임신초기부터 아버지와 자녀간의 연결이 강화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투자가 남성 속에 있는 폭력의 경향과 기회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책임만이 아버지의 몫?

셋째, 남성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에게 기대되는 복합적인 요구 앞에서 그들은 가족성원의 그 누구도 만족시킬 수가 없다는 지적이다. 여성들은 남성이 겪는 이런 혼란에 동조하여 남성에게 복합적인 기대를 했고 마지못해 여성이 지고 있는 역할을 나누었다. 여성들은 ‘부드러운’ 남자를 원하지 않고 가정에서의 여성의 주도권을 포기하기도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은 여성이 가정 내 주도권을 가진 비율이 높은 지역(예를 들어 카리브해 연안국의 경우 50%가 넘는다)에서의 면접조사를 기초로 나왔다.

예를 들어, 자마이카의 경우 가정에서 남성의 역할은 경제적 소득의 제공자임이 명확했다. 하지만 그들이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면 남성들은 가정 내에서 자신들에게 합당한 어떤 자리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남성다움과 아버지다움은 연결되어 있었고 때문에 어머니와 여자형제와 관계된 남성의 의무는 자기 자녀에 대한 것보다 강하기도 했다. 이에 남성이 갖는 자신의 이미지는 물질적 제공자이기 보다 가정생활에서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존재 여부에 따라 결정되야 하며 남녀 모두가 동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남성을 포함한 진전

이상과 같은 가정 내 남성과 아버지의 역할을 조명하면서 문제가 된 것은 남성에 대해 초점을 맞추면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과 지원사업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성의 권리는 보장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떤 사업에든 남성을 포함하지 않고는 진전이란 불가능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예를 들어 교육프로그램을 여성에게로 제한하기 보다는 남성을 포함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었다.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본적인 단위이며 가능한 한 최대의 보호와 원조가 가정에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준에서 규정한 원칙이다. 그 이행을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던 아버지의 역할을 조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