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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세계의 인권〈11〉 기아

굶주린 어머니와 배고픈 아이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배를 곯을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시기를 보릿고개라 한다. 어른들이 한숨쉬며 들려주는 보릿고개 얘기가 연속극에서조차 식상하게 느껴지는 우리 삶과 북한의 기아를 전해주는 뉴스 속의 세계는 아주 다른 세상이다.

96년 10월 '세계식량의 날'을 기해 기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하면서 유엔 사무총장은 "이처럼 풍요로운 세상에서, 기아와 굶주림의 망령을 겪는 이가 단 한사람이라도 있어서는 안된다. 오늘날, 8억에 달하는 인류가 만성적인 영양부족 상태에 있다는 것은 결코 단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 하였다. 그의 말에서처럼 세계인권선언에서 '보통사람의 지고한 열망'으로 천명된 '공포와 결핍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은 현실 속에선 조롱받고 있다.


1분마다 24명이 굶어 죽어

세계식량프로그램(World Food Programme)의 95년 통계를 보면, 저소득과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국가수는 92개국에 달하며, WFP의 주요 원조 수혜국 중 1인당 국민총생산액이 500달러에 못 미치는 나라가 44개국에 이른다. 빈곤과 기아, 내전 속에서 전 세계 인류의 1/4이상이 살아가는데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기본적인 인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고, 거의 10억에 달하는 인구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는 1분마다 24명이 죽는 꼴이고, 이들 사망자중 18명이 5살 이하의 어린이이다. 10억 이상 인구가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없고, 그로 인한 기아와 질병은 3일마다 5세 이하 아동 14만명 정도를 쓰러뜨리고 있다.


북한, 이디오피아 대기근보다 더해

먼 곳을 보기 전에 아주 가까운 북녘 동포의 상황을 살펴보자. 95년과 96년, 연이은 대규모 홍수로 인해 북한의 경작지 중 1/5이 파괴되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 결과 거의 2백만톤에 달한 곡물의 손실은 전통적으로 식량 부족국에 속하는 북한에게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WFP는 북한사회의 최소 곡물 필요량을 5백4십만 톤으로 추정하는데, 97년에는 2백3십6만톤이 부족한 것으로 보고있다. 대략 필요량의 50%가 부족한 이 현실은 그 비율에서 85년 이디오피아를 휩쓴 대기근과 굶주림보다도 더하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구호기관의 책임자들과 여타 방문자들은 기아의 전조가 뚜렷하다고 보고하면서, 즉각적인 식량원조를 호소하였다. 그 호소가 지구의 절반을 돌아 메아리 치는 동안 지속된 우리들 간의 줄다리기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태국 등, 모성사망률 1만명당 40명

96년 로마에서 열린 WFP 세미나는 모성이 겪는 기아가 미래의 절망일 수 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한 바 있다. 기아의 희생자 중 어머니와 어린아이가 겪는 고난은 탯줄로 연결되어 있다. 어머니가 임신중에 굶주린다면 어머니에게나 태어날 아기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끼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예를 들어, 빈혈이 있는 임신 여성에겐 조산과, 난산, 태아가 비정상일 위험성이 매우 높으며, 산모가 사망하는 경우 다섯중 하나는 심각한 빈혈이 그 원인이다. 성공적으로 유아사망률을 줄여온 인도네시아나 타일랜드 같은 나라에서도 여전히 모성사망률은 1만명당 40명꼴로 높기만 하다.

또한, 모성의 영양결핍은 저체중아 출산의 주요원인이다. 어머니 자신이 저체중아로 태어나 배고픈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면 십중팔구 다음 세대의 미숙아나 저체중아의 증가로 이어진다.


모성의 영양결핍 유아에게 치명적

출산 후에도 문제는 지속된다. 유아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수유기 동안에 높은 영양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저체중아는 철분 보유분이 낮고 빨리 고갈되는데, 빈혈상태인 어머니의 젖을 통해서는 쉽게 보충될 수가 없다. 모체가 영양결핍으로 힘겨운 상태를 유지하면, 일찍 젖이 마르게 된다. 출생 후 몇 달이 지난 뒤에야 유아 자신의 면역체계가 기능하기 때문에 유아는 어머니의 젖에서 여러 질병과 싸울 수 있는 면역성분을 공급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일찍 젖을 떼는 것은 유아에게 심각한 위험을 끼친다. 오염되고 불안전한 보충식을 일찍 먹임으로써 발생하는 설사는 높은 유아사망률과 영양실조로 귀결된다.


기아 해결 위한 공동대처 필요

설령, 유아기를 제대로 먹고 통과할 수 있다 하더라도 굶주리는 아동이 될 원인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많은 가정에서 식량확보의 안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아 속에서는 부모가 아동에게나 충분한 투자를 할 수 없다. 그 결과, 질병과 열악한 위생시설, 영양의 부조화, 과도한 노동 요구(성인에게나 아동에게나), 아동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현실을 낳게 되고 이 모든 것이 기아와 영양실조를 부르게 된다.

그래서, 기아에 대한 공동의 대처는 '오늘'의 배고픔을 충족시키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식량을 위한 방패가 되어야 한다. 오늘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은 일용할 양식 뿐만 아니라, 교육과 보건, 생산적인 투자와 소득을 확보할 수 있는 활동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도덕적, 인도적 요구에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미래의 식량을 위한 열쇠이기에 '풍요한' 사회 속에서 '기아'를 허용하는 것은 인간의 성장과 발전을 망치는 일이다. 아동이 교육받을 수 없고, 질병이 생산성을 제약하고, 굶주린 어머니가 굶주리는 다음 세대를 출산하는 속에서는, 배고픈 개인과 가족만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사회가 고통받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