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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현장 스케치> 아픈 상처를 딛고 참된 용기를 보여준 할머니…


4일 낮 11시30분 일본대사관 앞은 여느 때와는 달리 일본군 위안부로 한 많은 생을 살아간, 그러나 올바른 역사를 일깨워 주고 간 강덕경(69) 할머니의 노제에 참석한 이들과 취재진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풍물패 한두레와 김경란 씨의 살풀이 춤판이 벌어진 노제 한복판은 카메라 기자들에 둘러싸여 접근하기조차 힘들었고, 참석자들은 한걸음 뒤편으로 물러선 채 묵묵히 할머니의 가시는 길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한 귀퉁이에 서있는 이효재(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 씨에게서 고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난 7년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있어 중심이 되어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로 활동해온 그 또한 어느 누구보다도 고인과의 각별한 사이다.

“위안부 할머니 모두가 그러하지만 그 중에서도 강덕경 할머니는 일본정부가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범죄를 시인하며, 법적 책임을 지기 전에는 못 죽는다는 의지가 강하셨던 분이다. 지난해 1월 쓰러져 2-3개월 혼수상태로 지내셨다가 다시 살아나 1년 동안 버텨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더욱이 돌아가시기 1주일 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여권이 만기가 된다’며 일본으로 가기 위해 갱신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그만큼 강덕경 할머니는 우리 운동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신 분이다. 그림을 통해 한을 풀어나가기도 했는데, 이제 할머니가 남긴 그림은 두고두고 일본의 만행을 알리며, 다시는 그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젊은 세대에 가르침이 될 것이다”

매주 수요일이면 아픈 몸을 이끌고 섰던 바로 그 자리에 영정으로 다시 선 고인의 모습이 보였다. 슬픈 눈빛을 한 얼굴에 타들어 가는 담배를 한 손에 든 영정 속의 강덕경 할머니는 굳게 닫힌 일본대사관을 정면으로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12시 30분 노제를 마친 2백여 명의 추모행렬은 일본대사관을 중심으로 한바퀴 돌아 조계사를 거쳐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고인의 시신은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을 마친 뒤 고향인 경남 산청에 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