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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세계의 인권⑧ 폭력 속의 여성

9억6천만 성인문맹 중 2/3 여성차지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에서 끊임없이 파생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정치.경제적인 차별, 동등한 참여 등이 주로 논의되어 왔다면 최근에는 이에 덧붙여 성에 기초한 폭력, 즉 여성에 대한 폭력이 주목받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매맞고, 신체 일부가 절단되고, 태워지고, 성적으로 학대받고 강간당하는 현상이 소득 수준과 계층, 문화에 관계없이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살인, 조직적인 강간, 성적노예, 강요된 임신, 착취와 매매, 가정폭력… 이것들이 바로 가정, 사회, 국가 차원 모두에서 얼굴을 내미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이름들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 것인지는 강간의 경우만을 보아도 확연히 드러난다. 강간은 일상생활에서는 피해자인 여성과 알고 지내던 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 우습게 저지르는 폭력이요, 여러 국가가 이용하는 고문의 수단이며, 무력 갈등 속에서는 주요한 무기이며, 이주노동자에게는 착취의 수단이며, 난민촌에서는 목숨을 부지하는 댓가이다. 구유고의 내전 속에서 수천명의 여성들이 고의적 강간으로 임신한 것이나, 르완다에서 이루어진 공공장소에서의 윤간 등은 모래알에 불과하다. 전 세계 난민의 80%를 차지하는 여성과 아동에 대한 위협과 매춘 강요는 특히 만연된 문제이다.


여성을 위협하는 가정폭력

법, 경제, 정치 등의 공적 생활 영역만이 다는 아니다. 전통적으로 시민, 정치적 권리에 주어진 우선성은 공적 생활 속에서의 남성과 국가와의 관계를 겨냥하고 그 속에서의 남성 보호에 주안점을 두어왔다. 많은 여성이 공적 영역에서 고문의 희생자가 될 수 있지만 지금까지 가장 큰 여성에 대한 폭력은 사적 영역에서 발생해 왔다. 즉, 평화와 조화가 가득 찬 피난처로 미화되는 가정에서의 폭력이 여성의 생애 전반을 위협하는 빨간불이 되었다.

94년 여성폭력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이 내놓은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주목하고 있다. 뿌리깊은 남아선호의 결과로 여아낙태와 여아살해가 행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2010년이면 여성 100명에 남성이 123명이나 된다는 성비파괴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정상대로라면 현재 인도에는 3천만의 여성이, 중국에는 3천8백만명의 여성이 더 있어야 한다. 여아에게는 남자형제와 남편에 비해 음식을 잘 주지 않기 때문에 4억 5천만명으로 추정되는 여성들이 어린시절의 영양결핍의 결과로 발육이 부진하다.

여성은 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한해 약 2백만명의 소녀에게 여성 음핵 절제시술이 더럽고 유해한 방법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르게는 1세 이하 때부터 이루어지고 있는 조혼과 10대 임신으로 여성의 수명과 건강, 교육, 고용기회는 치명적인 해를 입는다.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19세 이하의 나이에 첫 출산을 하는 경우가 50%를 넘고 있으며, 1천 5백만 이상의 소녀들이 매년 위험한 출산을 하고있다.

아내는 구타와 심지어 살인의 대상이다. 영국에서의 통계에 따르면, 1885년에서 1905년 사이에 저질러진 살인건수의 1/4이 남편에 의한 아내살해였다. 20세기의 통계에서도 이런 양태는 변화하지 않았고, 유사한 통계는 미국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여성이 살해된 경우 절반이상이 가족에 의한 살해이고, 방콕 빈민가의 기혼여성 중 절반 이상이 남편에게 정기적으로 매를 맞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모든 종류의 법 체제는 가정폭력의 위력에 대해 무관심하다. 최근 들어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가정 내 폭력과 강간, 성희롱 등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인권'문제로서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는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92년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여성에 대한 억압 지점으로서 가족과 가정이라는 사적영역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국가책임성에 대해 전통적인 인식을 재고하는 것이 여성인권의 중대한 프로젝트가 되었다.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 93년 세계인권회의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이 구호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이보다 25년 앞서 열렸던 회의에서는 '여성'에 대해 언급하지도 않았고, 성(性)에 근거하여 인권이 갖고 있는 특성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76년 '유엔 여성 10년'을 계기로 사람들은 '왜 여성의 인권과 삶은 남성의 그것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는가'고 묻기 시작했고, 그런 물음은 90년대에 들어서야 인권 논의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여성인권의 출현에 대해 한편에선 "'인권'에 주목하는 것 자체가 인권의 보편적 적용을 의미하는데 새삼스럽게 '여성의 인권'을 끄집어 말하는 것은 어수선한 중복이자 과잉일 뿐이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앞서 살펴본 예에서처럼 여성이 당하는 폭력이 '보편적인 인권', '성의 구분 없는 동등한 처우'라는 단순한 요건에 의해 구분되고 시정될 수 있는 것일까?

남성의 권리와 같은 내용의 권리를 부정당했을 때만 여성의 권리가 침해당한 것으로 보는 것에 그친다면, 성을 따라 구조화되고 분배되는 세계를 비판하고 개혁하기에 부적합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저질러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인권이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강요된 침묵에서 절반의 목소리로 드러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