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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자료 전문> 시민·사회단체 성명서- “항소심 재판에 요구한다”


12.12 군사반란과 5.18 시민학살의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1심 재판을 마치고 이제 항소심 재판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동안 1심 재판은 온 국민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진행되었다. 그만큼 이 재판이 지닌 의미는 중요한 것이고 그에 따른 결과는 우리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1심 판결은 전두환 피고인에게 군사반란 및 내란수괴죄 등을 인정하여 사형을 선고하였고 노태우 등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대부분 유죄를 인정해 형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일부 피고인의 경우 시민학살 부분에 대해서 혐의를 확정하지 못한 채 무죄를 선고하였다.

전두환 등 피고인들이 자행한 인권침해와 헌정질서 유린 행위가 이미 공지의 명백한 범죄 사실임에도 그동안 우리는 그들의 잘못을 처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추종하면서 찬양했던 어처구니 없는 시대를 살아야 했다. 이런 불행했던 과거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는 이번 1심 판결만으로도 더할 수 없는 감격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재판의 의의는 피고 개개인들에 대한 형사처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과거를 심판하여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데 더 큰 목표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까지 우리 역사에서 한차례도 오욕으로 점철된 과거사를 올바로 심판하거나 청산해보지 못했던 점을 생각하면 이번 재판이 갖는 중요성은 이루말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1심 재판은 진행과정과 그 결과에서 이러한 역사적 요청에 부응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적지 않았다.

이에 우리는 2심에서는 역사적 심판이라는 의의를 깊이 자각하여 민주법치국가의 사회정의가 살아있는 재판을 진행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첫째, 반란과 내란 그리고 시민학살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1심에서는 6개월에 걸친 재판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의 진상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못했다. 특히 5․18내란목적 시민학살의 진상은 거의 밝히지 못했다. 사건의 분명한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채 재판의 진정한 의의를 살릴 수는 없는 것이며 피고인들에 합당한 처벌도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필요하면 현장지휘관들과 무력진압에 나선 일선 병사들까지 소환하여 엄정히 신문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그들도 처벌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온 국민이 특별법까지 제정하면서 지난 몇 년동안 기울였던 노력을 헛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역사에 대하여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둘째, 심리를 집중하여 재판을 효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심리를 집중하는 것은 신속한 재판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에 부합한다. 특히 이는 항소심에서 피고인들의 구속기간이 제한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고 하겠다. 지난 1심에서도 1주 2회 재판을 실시하여 이미 부분적으로 집중심리제를 채용하였으나 집중심리의 원칙을 분명하게 견지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변호인측의 시비를 불러오기도 했다. 따라서 항소심 재판부는 심리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하여 집중심리의 원칙을 확고하게 관철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재판부는 직권에 의한 증거조사 등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 주어진 권한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12․12군사반란과 5․17 내란 그리고 5․18시민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최규하 전대총령이 법정에서 반드시 증언해야 한다. 그는 이 모든 사건에 가장 핵심적으로 관계한 책임있는 자로서 마땅히 피고인들과 함께 역사의 법정에 서야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최소한 법정 증언조차 거부하고 있다. 재판부가 실체적 진실의 규명이라는 법원의 의무를 다하고 진실에 입각한 올바른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형사절차법에 따라 구인을 해서라도 반드시 그의 증언을 들어야 한다. 이밖에도 필요한 증거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넷째, 5․18 관련 피해자들의 공판정 진술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형사피해자의 진술권은 헌법상의 기본권일 뿐만 아니라 당면한 재판의 5․18학살의 진상, 내란목적살인죄의 성부를 규명하는 일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사항이다. 법원은 가능한 폭넓게 피해자 진술을 청취하여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고 나아가 사법부의 위상이 공정한 재판을 통해 확립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재판공개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이 재판 피고인들의 혐의사실은 통상의 예와는 달리 공지된 것들로서 재판공개가 특별히 피고인들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 더욱이 재판이 갖는 역사적 의미나 국민의 관심에 비추어 볼 때 완전 공개되어야 한다. 실제적으로는 텔레비젼을 통한 직접 중계가 최선의 방식이다. 이는 피고인들에게도 국민을 향하여 그들의 주장을 설명하거나 변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이를 통해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짐은 물론이다.


여섯째, 검찰은 소추권자로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검찰은 1심 재판에 이르기까지 법집행자로서의 엄정함을 보이기보다는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는 모습을 적지 않게 보여왔다. 우리는 검찰의 방대한 수사자료, 새로운 사실규명 등의 성과를 과소평가하지는 않으나, 5․18학살 관련자에 대한 일부기소, 일부 범죄사실에 대한 무죄 등은 그 책임이 일차적으로 검찰에 있음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검찰이 시대적 소명을 자각하여 학살자의 죄행을 낱낱이 밝히고 끝까지 엄정한 법집행자로서의 모습을 보일지에 의문을 금할 수 없다. 검찰이 이러한 의문을 불식시키고 본연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배전의 노력을 다하는 한편 정의를 위해 싸우는 민주시민과의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 재판은 오욕에 찬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고 굴절된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재판은 재판부와 검찰 등 법원 관계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재판을 올바로 수행하는 일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부여된 임무이다. 그동안 온 국민의 굳은 의지로 막막한 독재의 수렁에서 과거 청산의 봉화를 올리던 때처럼, 정의롭고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모두 끝까지 재판에 동참하고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은 미래의 올바른 민족사를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1996. 10. 6.

전국연합, 민주법연, 민교협, 민가협, (사)민예총, 5․18 진상규명과 광주항쟁정신계승 국민위원회, 5․18학살자 재판회부를 위한 광주전남공대위, 인권운동사랑방, 유가협, 참여연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한국여성단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