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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외국인노동자보호법 제정 결사저지

경찰, 불법체류자 2명 연행에 전경 5백명 출동

외국인노동자보호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서명작업이 4월말부터 진행된 가운데 출입국관리소, 안기부 등이 이를 막아 나서는가 하면 공권력을 동원하는 사태까지 벌어져 문제가 되고 있다.

3일 출입국관리소는 5백여 명의 전투경찰을 동원해 성남시 주민교회에 소재한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상담소)에 난입, 네팔노동자 부부를 강제연행해 갔다. 또한 이 과정에서 김해성(37·상담소 소장,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회장)목사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됐다.

상담소 이경원(25)간사에 따르면 외국인노동자보호법 제정을 위한 서명작업에 들어간 뒤 안기부 등으로부터 여러 차례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서명작업을 벌이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협박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실제 2일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공공부문노조 결의대회에서 외국인노동자 20여명과 상담소 실무자 및 자원봉사자등 40여 명이 서명작업을 벌일 때 출입국관리소 직원10여 명이 집회장소까지 들어와 강제연행 하려한 것을 주변 노조원들의 도움으로 저지할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은 바로 이튿날 일어났으며, 보라매집회장소에서 본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다시 나왔다고 한다.

공무집행방해로 구속3일 낮12시경 출입국관리소측은 이날이 상담소 정기휴일임을 알고와 상담소로 들어가는 골목 2곳을 봉고차로 막은 채, 외국인노동자들을 강제구인했다. 이 과정에서 상담소를 찾은 로잔 구릉(33·Rosan gurung)씨 부부와 산재노동자 아말 바하둘 씨 등 3명이 강제구인 되었다. 그뒤 경찰은 산재를 당한 아말 바하둘 씨는 이후 시비가 생길 것을 우려해 풀어주었고, 법률상 문제가 없어 보이는 불법체류노동자 로잔구릉 씨 부부를 봉고차에 태워 6시간 가까이 감금했다.

한편 아말 바하둘 씨의 연락으로 이 사실을 알게된 김해성 목사와 실무자들은 오후 2시30분 상담소에 도착했으며, 출입국관리소측을 찾아가 연행중지를 요구했다. 이때 이해학(주민교회)목사등이 “6-7시간 감금된 네팔인 부부가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겁에 질려있으니, 성남경찰서의 보호조치 상태에서 상담소에서 숙박하고 심리적 안정과 출국준비를 한 후 김해성목사와 함께 출두하겠다”고 제안했으나 관리소측은 이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오후 8시경 경찰병력을 투입한 것이다.


강제연행만이 대안

이미 오후부터 성남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 40여명과 유가협, 시민 등 60-70명이 연행중지를 요구하며 대치상태였는데, 출입국관리소측은 강제연행을 막아선 시민들을 강제진압했다. 심지어 네팔인 부부가 탄 봉고차를 저지하기 위해 차 바퀴 밑으로 들어간 상태에서도 차를 움직여 이경원 씨와 양혜우 상담소사무국장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경원씨는 “불법체류노동자 2명을 잡기 위해 5백여명이 동원된 광경은 아주 끔찍했다”고 말했다. 무자비한 경찰의 공권력 투입과 김목사의 강제연행에 격분한 2백여명의 시민들은 성남 중부경찰서 앞에서 연행직후부터 4일 아침7시까지 항의농성을 벌였다.

한편 김목사는 연행당시 머리부상으로 혈압, 구토, 어지럽증, 두통증세를 보였으며, 인하병원 이준희의사도 뇌의 컴퓨터 단층촬영등의 검사가 필요하다고 경찰에 통보했으나, 경찰측은 이를 무시한 채 구속조치를 취했다.


외노운동 탄압 선전포고

출입국관리소 문화춘 조사계장은 “이번 사건은 단속기간에 벌어진 우연한 일일뿐 상담소를 탄압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출입국관리소 직원에 의하면 “어제 서명운동으로 인해 출입국관리소 상부로부터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을 출입하는 외국인노동자를 강제로 연행할 것을 지시 받고 출동했다”며 시인했다고 상담소측은 전했다.

상담소측은 “이번 공권력투입은 외국인노동자보호법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대한 탄압이며, 외국인노동자운동을 향한 선전포고”라며 “정부는 이 서명운동을 통해 외국인노동자문제에 대한 국민홍보와 여론 확산을 우려해 이에 쐐기를 박고자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는 “외국인노동자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깨닫고 구성된 조직을 와해하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했다. 이에 상담소측은 민주노총, KNCC등을 중심으로 대책위를 구성해 공동대응에 나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