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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독자투고>신성한 국방의 의무이행이 노동탄압의 도구로 쓰이는 현실은 이제 끝나야 한다

23일 새벽 5시 각목을 든 경찰이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여의도 민주당사 안에서 농성을 하고 있던 노동자들을 연행해 갔다. 연행된 이들 중에는 허태구 씨와 박정수 씨라는 2명의 병역특례해고 노동자가 있었다.

병역특례노동자란 현역병으로 입영하여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대신 방위산업체 같은 곳에 취직해 5년(93년 이후는 3년)동안 근무하는 것으로 병역의무를 대신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원래 병역특례제도는 과학기술분야의 고급인력을 국가기관이나 방위산업체의 연구개발업무에 종사케 하여 국가발전에 이바지하게 하는 것이 그 취지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는 병역특례제도의 취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심화되는 제조업체의 인력난을 해소한다는 이유로 이 제도를 확대 실시해 왔다. 이렇게 기형적으로 적용범위가 확대된 병역특례제도는 바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도구로 악용되어 왔다.

병역특례노동자들은 해고되면 그동안 몇년을 근무했던지간에 곧바로 징집영장이 발부되어 군에 입대하게 된다. 실제로 풍산금속 안강공장에서 근무하던 한규식 씨는 복무만료 이틀을 남기고 해고되어 징집되었다. 노동조합법에는 "해고된 근로자도 해고의 효력을 다투고 있는 동안에는 근로자로 볼 수 있다"(제3조 4항)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신청할 시간적인 여유를 갖지도 못한 이들에게(헌법에 보장된 재판받을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병무청에서는 징집영장을 발부해 버린다. 여기에 따르지 않으면 곧장 징집기피로 수배자가 되는 것이 병역특례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이들은 작업장 내에서도 늘상 해고의 위협 때문에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노동조합에의 참가)를 행사하지 못한다. 사정상 잔업이나 특근작업을 거부하면 회사측은 '싫으면 군대나 가라'는 식의 협박을 일삼는다. 이런 협박에 떠밀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잔업을 해야 한다.

군사정권시절 부당하게 해고되어 어쩔 수 없이 수배자가 된 이들은 구속될 경우 대부분 실형을 살고 출소한 뒤 또다시 군입대를 해야하는 악순환이 문민정부 하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23일 민주당사에서 연행된 허태구 씨는 3년 1개월을 복무하고 89년에 해고되어 무려 6년의 수배생활을 해 왔고, 어느새 나이는 서른이 되었다. 허씨가 구속되어 실형을 살고 다시 군입대하여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면 적어도 서른 두세살이 될 것이다. 무려 십이삼년의 세월을 군사정권 시절의 부당한 제도로 인해 피해를 입은 그가 다시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허씨처럼 병역특례 노동자로 있다가 노조활동으로 해고된 이들은 모두 12명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청년·학생 양심수의 병역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공감대를 감안하고 정상적인 사회복귀를 할 수 있도록 일정정도 조처한 바 있다. 우리는 정부가 국가발전의 주역인 노동자들에게도 형평성을 고려하여 이들이 군사정권 시절에 받은 부당한 탄압으로 상실된 지위를 회복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빠른 시일 내 관련법규 개정할 것을 촉구한다.

김영환(양심선언군인전경지원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