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단체탐방 23 노동인권회관

시련 뒤에 잉태된 옥동자라 할까? 노동인권회관이 만들어진 배경을 돌아보면 누구나 이 귀한 열매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80년대 모진 돌 바람 중의 하나였던 성고문 사건, 그 바람을 맨몸으로 맞아야 했던 권인숙, 눈물과 가슴 치는 고통으로 변론을 했던 조영래 변호사, 그리고 ‘재수 없는 희생자’를 넘어서서 ‘우리 모두의 삶’을 생각하게 해준 세상이 모태가 되어 노동인권회관이 태어났다. 당시 국가로부터 받은 배상금 4천만원을 손에 쥐고 그것이 개인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노동자,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한 징표라고 생각한 권인숙 씨는 앞으로 있을 침해를 예방할 수 있는 ‘무엇’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고, 그 취지를 들은 조영래 변호사는 모금운동을 벌여 기금을 조성했다. 그것을 씨앗으로 89년 10월 28일 문을 연 노동인권회관의 그간의 곡괭이질, 굵어진 손마디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노동인권회관의 주요사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임금, 퇴직금, 부당 해고, 산업 재해, 직업병, 노동조합활동, 일상생활 전반에 관한 노동상담활동이다.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많은 노동자를 만났고 걸쭉한 인간 관계를 경험했다. 그러나, 노동자가 안고 찾아온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아파할 수는 있었지만, 실제로 ‘대리인’이 되어 처리할 일에 접할 때 무자격 상담자로서 노동위원회 등에 참가하기가 불가능했고 변호인을 동반한 회사측의 대응에 맞서 불리한 점이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또한 사회 환경의 변화로 노동자의 의식과 생활수준도 많이 달라졌으나 지금까지 노동 운동을 통해 단련된 ‘감’으로 상담을 하기에는 법률 실무 등의 면에서 뒤떨어진 감이 많았다. 이에 ‘상담의 전문화’를 부르짖으면서 결실을 보게 된 것이 노동인권 내에 [공인노무사사무소]를 개설한 것이다. 91년부터 1년간 노동인권회관 실무자로 일해온 노행남 씨가 공인노무사자격을 갖추어 인권 회관의 상담실장직을 겸임하면서 공인노무사사무소를 지난 3월에 정식 등록하게 되었다.

둘째, 노조 방문교육이 주를 이루는 교육활동이다. 노조 활동에 대한 것 뿐 아니라 노사 양쪽의 관계를 위한 교육, 특히 관리자에 대한 교육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셋째, 정책실장을 중심으로 인권회관에 소속된 노사관계전문연구자들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이루어지는 자료 조사, 연구 활동이다. 학자들의 능력과 인권회관 실무자들의 현실감각과 경험, 해결방안에 대한 통찰력의 결합이 중요하다. 93년 대우조선노동조합원 의식조사, 서울신탁은행 노동조합원 의식조사, 현대 3사 노무진단팀에서 노동조합부분을 담당한 활동 등이 있었고, 올6월말 마무리될 예정으로 구로공단노동자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변화하는 시기에 노사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하는 문제의식에서 연구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장노조간부들이 보고 참고할 수 있는 ‘세계적 주요기업의 노사관계사례집’을 7월말까지 발간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노사관계에 대해서는 주로 기업차원의 경영 합리화만이 부각되어 온 것이 현실이나, 이는 실제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 이번 사례집을 계기로 노조간부들이 참고할 수 있는 사례를 계속적으로 발굴할 것이고 국내조사를 축적, 유형화하는 수준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또한 노동자의 구체적 현실에 체계적으로 접근한 보고서로써 노동백서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직 백서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제대로 된 노동인권백서의 발간을 꿈꾸며 최선을 다한 열매가 [노동인권보고서]이다. 올 6월 22일에 제 4집 발간기념회를 가지게 되는 노동인권보고서는 노동인권백서의 ‘출발’의 의미를 가졌고 한해의 노동자의 구체적 수준, 생활에 대한 핵심 보고서이다.

지금까지 오면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92년 강경대 열사 정국이후 유지할 수 없을만큼 어려워 회관의 문을 닫느냐를 고민할 때도 있었다. 이때 김문수(전 소장)씨와 노병직(현 소장)씨가 인권회관에 합류하면서 키잡이로 고민한 것이 있다. 그것은 자원봉사의 심정이 아니라 인권회관을 직장으로 생각하고 장기적 터전으로 삼아 일할 조건을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현재는 급여 규정을 두고 작지만 ‘임금’을 지급하는 직장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고 그만큼 일꾼들의 전문적 성장을 위한 노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나 기관으로나 필요한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주요 목표였고 현재 7인의 엔진이 힘차게 가동중이다.

현 인권회관 소장인 노병직 씨는 권씨와 인권회관에 대한 인연과 애정이 남달리 깊다. 권인숙 씨가 막논동 현장에 뛰어들어 인노련과 관련하여 그 모진 고초를 당할 당시 그가 인노련의 부위원장이었던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의 노동 현실에 대해 느끼는 체감 온도는 이렇다. 한마디로 노동자들은 ‘마음이 고달프다’. 노동자들의 처지가 향상되어 개인적 삶 자체는 풍족해졌다고 하지만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대접은 그에 걸맞지 않다. 노동자들의 집단적 요구는 반 사회분자로 취급받기 십상이고 사회 전체가 ‘노동자’를 적대시하는 현실이 어렵고 마음이 무겁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정신적 테러’를 당하고 있다 고나 할까? 이런 노동자의 외로움을 해소하고 사회 전체가 신뢰감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인권회관이 있다면 인권회관을 잉태한 세상은 무엇을 하여야 할까?

<[인권운동사랑방] 류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