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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헌 법 소 원 심 판 청 구(전문)


청구인 : 노태훈
청구인 대리인 : 변호사 이석태 김형태 조용환 백승헌

위 청구인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하여 아래와 같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합니다.


1. 청구인의 지위

청구인은 1993. 7. 15.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경찰청 보안국에 구속된 후, 같은 달 23. 서울지방검찰청으로 구속 송치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의 수사를 받고, 같은 해 8. 10. 구속기소되어 서울형사지법에서 재판을 받은 후 같은 해 10. 20. 위 법원의 집행유예판결을 선고로 같은 날 석방된 사람입니다.


2. 침해된 권리

가. 헌법 제10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나. 헌법 제27조 제4항 무죄로 추정될 권리


3. 침해의 원인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

청구인이 1993. 8. 3. 서울지방검찰청으로 구속송치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때부터 같은 해 집행유예선고에 의하여 석방될 때까지 사복을 입지 못하게 하고 재소자용 의류(수의)를 입게 한 처분


4. 청구이유

가. 헌법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국가권력으로부터 이를 보장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그리고 그러한 권리의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형사피의자로서, 또는 피고인으로서 구속수사를 받고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다 하더라도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 이와 같은 권리는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여 구속됨으로써 제한될 수 있을 것이나 그러한 권리의 제한은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에 국한되어야 하는 것이며 따라서 구속영장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는 권리는 일정한 수용시설에 구속함으로써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그쳐야 하고 그 이상 권리의 제한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 흔히 수의라고 하는 재소자들이 입는 의류는 보통 흰색이나 회색, 또는 파란색으로 되어 있는데 누가 보아도 그가 현재 범죄혐의로 구속수감되어 있거나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되어 형을 복역하고 있는 재소자임을 금방 알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복의 외형만으로는 그가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미결수용자인지 아니면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형을 복역하고 있는 기결수인지 전혀 구별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강제로 어떤 의복을 입게 하는 것은 그 자체 그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고 자기가 원하는 의복을 선택하여 입을 행복추구권을 박탈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누가 보아도 범죄자와 동일시될 수밖에 없는 의복을 강제로 입는다는 것은 사람에게 최대한의 인격적 모욕을 가하는 행위로서 그 사람의 인격적 존엄과 가치에 그보다 더 큰 침해는 생각하기 조차 어렵습니다. 그러한 것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유죄로 확정이 된다면 혹시 이러한 권리를 어느 정도 제한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아직 유죄확정 판결을 받지 않은, 그래서 무죄로 추정되고 검사와 대등한 지위에서 방어를 하여야 할 미결수용자들의 경우에는 그들의 신체를 구속하였다는 것 외에는 모든 면에서 무죄인 것으로 인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결수용자에게 강제로 수의를 입히는 것은 그의 유죄를 전제로 한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도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것과 다름없이 보이기 때문에 그의 명예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오고 인격을 침해함으로써 결국은 무죄로 추정될 권리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라. 국제연합이 정한 "재소자의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 규칙"은 "미결수용자는 깨끗하고 적절한 자신의 사복을 입도록 허용되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제88조 제3항). 그리고 이 규칙은 기결수의 경우에도 정당한 목적을 위하여 수용시설 밖으로 재소자가 옮겨질 경우에는 자신의 사복을 입거나 달리 눈에 띄지 않는 의복을 입도록 허용되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제17조 제3항).

마.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헌법적, 국제인권법적 원칙에도 불구하고 행형법이 미결수용자에 대한 아무런 배려 없이 기결수에 관한 규정을 준용함으로써(제62조) 기결수에 대한 각종 처우가 그대로 미결수에게 적용되는 현실이고 미결수의 의복문제 또한 그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 실정입니다.

바.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미결수에게 재소자용 수의를 입게 하고 심지어는 일반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인 법정에까지 그러한 옷을 입고 출정하여 재판을 받게 함으로써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기 전에 이미 외부인들에게 범죄인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며 미결수 스스로 그러한 옷을 입음으로써 인격적 모욕감과 수치심에 시달리며 자기방어권까지 자유롭게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심각한 문제점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사건 청구인 역시 1993. 7. 23.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때부터 같은 해 10. 20. 석방될 때까지 강제로 수의를 입도록 함으로써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훼손당하고 무죄로 추정될 권리를 침해당하였습니다.


5. 그러므로 청구인이 서울구치소에 미결수용자로 수감되어 수사와 재판을 받는 동안 사복 대신 재소자용 수의를 입게 한 처분이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며 그러한 공권력 행사의 근거가 되는 행형법 제62조가 미결수에게 사복대신 수의를 입게 하도록 허용하는 점에 관한 한 헌법에 위반되는 규정임을 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첨부서류(생략)- 구속영장, 사건송치서, 판결, 위임장

1993. 12. 2.

위 청구인 대리인 변호사 이석태 김형태 조용환 백승헌

헌법재판소 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