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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양심수 군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 성명서

우리는 왜 군 징집영장을 반납하는가

1. 우리의 문제를 과거청산의 차원에서 다룰 것을 다시 한번 요구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들어서기까지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와 땀이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군사통치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 군사정권과는 다른 문민정부의 역할임을 강조하였다.(중략)

그 결과 병무청은 지난 7월 6일 정무장관실, 청와대 유관비서실, 국회 국방위 등과의 협의하에 우리들의 요구대로 지난 88년도에 여야 합의로 만들어졌던 병역법 시행령으로 현행 법령을 되돌리는 내용의 개정안을 국방부에 건의하였던 바 있다. 또한 지난 5월 7일부터는 대상자들에게 발부되던 징집영장을 연기시켜 주면서, 이는 부당징집문제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해결의지의 표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우리 대상자들은 큰 기대를 안고 과거청산의 차원에서 문민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국방부는 병무청이 제안한 시행령 개정안 검토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행정상의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마침내 지난 9월말경 법령개정을 거부하였다. 또한 이러한 국방부측의 입장변화에 편승하여 병무청은 530여 대상자 중 겨우 3%에 불과한 수형기간이 2년 이상인 13명만을 구제해주겠다는 무책임한 입장으로 선회해버렸다. (중략)


2. 문민정부에서만큼은 정상적인 사회진출과 생활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530여 청년학생 수형자들은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3년 가량의 부당한 수형생활을 하였다. 그 결과 정상적인 학업기회를 상실함은 물론, 대상자의 평균연령이 군입영 적령기에서 4-5년 이상 경과되어 정상적인 군복무를 하기도 벅차거니와 복무 후에는 이미 20대 후반으로 접어들어 취업연령의 초과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진출의 기회가 박탈당할 상황에 놓여 있다.(중략)

정재원 씨(27세)의 경우, 이미 결혼하여 부인이 임신 6개월째인 상황이었다.(중략) 그는 정말 건강한 사회인으로, 가장으로 살아가려는 희망으로 감정평가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10월 8일 국정감사 과정에서 발표된 병무청의 입장에 충격을 받은 그의 부인은 유산을 하였고, 그의 가정은 지금 말로는 다 표현할 수조차 없는 좌절에 빠져 있다.

노태술 씨(28세)의 경우, 1988년 같은 사건으로 구속-수감되었던 학생 대부분은 개악 이전의 시행령으로 구제되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나 그만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2심 재판을 받던 중에 불어닥친 공안정국의 와중에 병역법 시행령이 여야의 합의로 개정된 지 7개월만에 다시 개악됨으로써 20대 후반의 나이에 다시 군에 징집되어야만 하는 불공평한 처지에 놓여 있다.


3. 우리는 부당징집에 응할 수 없으며, 징집영장의 일괄 연기조치를 요구한다.

국방부가 과거청산과 개혁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스스로 주도적이지 못하여 우리 문제해결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병무청은 우리 대상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징집영장을 계속 발부하고 있다. 이에 우리들은 이러한 병무청의 태도를 이 문제의 해결에 대한 사실상의 포기로밖에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발부되고 있는 징집영장이란 과거청산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거부하기 위한 제도적 폭력에 다름 아니라고 규정하며 (중략) 현재까지 발부되어 있는 징집영장은 반납할 수밖에 없으며, 이후 발부되는 징집영장 역시도 수령을 단호히 거부할 것임을 천명한다.

1993년 10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