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가의 편지

다시 잘 마주하기 위해, 누우러 갑니다

2026 체제전환운동포럼 <되돌아가지 않고 새롭게>가 2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렸습니다. 사랑방에서도 많은 에너지를 쏟은 자리인만큼, 활동가 모두가 총출동했죠. 공식적으로는 1월 30일자로 사랑방 활동 마무리(!) 2월 2일부터 안식년 시작(!)이었던 터라, 저는 ‘투어리스트’ 정체성을 가지고 3일 내내 포럼을 즐기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러지는 못했지만요. 사랑방 담당자로 활동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후원인도 모으고 활동들을 정리하고 매뉴얼을 만들고 인수인계까지 하다 보니, 또 남아있는 다른 일들까지 해치우다보니 2월을 맞이하고도 너무 바빴습니다. 그리고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으시겠지만, 뭔가 정리를 시작하다보면 일을 착착착 해나가기보다 온갖 상념에 빠지게 되잖아요. 2019년 활동을 시작한 사랑방에서 벌써 7년의 시간을 보내고 안식년을 간다니…! 스스로 애썼다 싶기도 하고, 2007년 말 어리버리 시작했던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니…? 현타도 옵니다. 차마 못 꺼낼 소회도 많고요.

체력은 후달리고 심경은 복잡한 상태에서 체제전환운동포럼이 열리는 대방동으로 향했습니다. 3일의 마지막 날, 종합세션 ‘2026년 정세전망과 체제전환운동의 과제’에서는 사랑방 활동가 미류가 발제를 맡았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졸다가 사진 찍히면 안 되는데’ 걱정을 하다가 40분 가까운 발제를 듣고 나서는 사랑방 활동가 대화방에 자연스럽게 스르륵 남기게 되더라구요. “미류 발제 되게 좋았다. 안식년 가야되는데 가슴이 뜀.”

마음이 참 요상하죠? 바로 직전까지는 ‘안식년 언제 시작되냐!!!’ 한탄하고 있었는데 말예요. 제가 남들보다 선동을 잘 당하는 사람이긴 한데, 가슴이 뛰니까 좋더라구요. 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여기에서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도 떠오르고, 같이 도모할 사람들도 언뜻언뜻 보이고…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새롭거나 다른 종류의 일이 시작될 때의 두근거림이 있잖아요. 사실 지금까지도 그런 기운에 기대서 쭉 활동을 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가슴은 두근거리는데요… 안식년은 가야 하니까요. 우선 제 계획은 눕는 거예요. (ㅎㅎㅎ) 다들 안식년 가면 뭐 할 건지 계획은 세웠는지 묻는데, 그때마다 제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한 달 동안 방콕하면서 동거묘 영심이랑 뒹굴기, 그것 말고는 아무 계획도 못 세웠습니다. 사실 2025년은 제 인생에서 제일 덜 씻은 해이면서(윽) 제일 적게 누워있었던 해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워있으려고요. 최대한 길게, 최대한 적극적으로. 생각만 해도… 너무 너무 좋아요! 일이 하루가 다르게 정리되어 가는 요즘에는 안식년 간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저도 모르게 못 쉬고 있는 동료들을 앞에 두고 너무 진심으로 크게 웃어서 민망할 때도 있습니다.

인식년이 저를 많이 비우고 또 다른 기운이 자연스럽게 차오르는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선동당할 때와는 다른 종류의 두근거림이 있습니다. 언젠가 사주를 볼 줄 아는 선배가 제 사주를 봐줬는데, 진짜 너무 제 인생 같아서 어떻게 살아야 되나 머리를 쥐어뜯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선배의 비유에 따르자면 저는 ‘작은 텃밭’과 같은 사람이어서 딱 그 텃밭만큼 안분지족하며 살아야 하는데, 텃밭에 나무가 다섯 그루 꽂혀있다는 거예요. 그 해에는 ‘일을 적극적으로 피해라’,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버려라’와 같은 조언을 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어떻게 보면 안식년이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 자체를 강제 차단하고 쉬는 시간이기도 하니, 올해를 그렇게 지내보려 합니다. 그 자리에 ‘뭔가를 재미있다고 느끼는 마음’을 잘 가꾸어보려고요.


반려묘 영심이


마음을 정리할 때면 항상 제 스승님이 오래 전에 건네준 시를 떠올립니다. 그만큼 자주 꺼내보는 시인데, 안식년을 가면서 활동가의 편지를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꺼내게 되네요. 세상을 바르게 뜨겁게 아프게, 다시 잘 마주하기 위해, 한 해 잘 쉬고 돌아오겠습니다.


오늘은 - 김후란

높게 더욱 높게
낮게 더욱 낮게

남길 것은 남기고
구기지 않게
잊을 것은 잊고
시들지 않게
버릴 것은 버리고
쌓이지 않게
나를 세우고
너를 세우고

세상을 바르게
뜨겁게 아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