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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비워야 할 것들을 비우는 것부터

소식지에 ‘활동가의 편지’를 언제 썼나 하며 뒤져보니 작년 도보행진 마치고였네요. 30일 걷고 나서 쓰고, 이제 46일 굶고 나서 쓰는구나. 재밌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시간을 압축적으로 지나는 중이라 그런가 봅니다. 인권운동이라는 게 하루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대략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만들어지는 일상이 있기도 하거든요. 제가,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사는 게 편한 사람이라 그렇기도 할 텐데, 일상을 다시 만드는 것부터 숙제가 된 시간이 조금 낯설기도 합니다.

2022년 봄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단식농성은 저에게 몸으로 싸운다는 감각을 남긴 시간이었습니다. 몸을 잘 지키고 돌보는 일이 잘 싸우는 길이 되는 시간이랄까, 그간의 활동과 비교해보면 낯선 시간이었지요. 인권운동이 언제나 몸으로 무언가 함께 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몸으로 등장하는 경험에서 달랐던 걸까요. 단식농성을 마무리하고 나서도 몸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 미음을 넘길 때 식도와 위장의 윤곽을 느꼈다던 누군가의 경험에는 못 미쳤지만 몸이 새롭게 조직되는 느낌들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단식보다 복식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단식 전부터 들었던 터라, 머릿속이 ‘뭐 먹을까’ ‘어떻게 먹을까’에 관한 생각으로만 꽉 차는 시간이었지요. 먹고 걷고 자고, 짬짬이 책을 읽으며 한 달 넘는 시간을 보냈더니 몸은 금세 회복되는 듯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회복을 바라며 전해준 마음들이 고스란히 잘 회복하는 힘이 되어 몸에 찾아오는 듯했습니다. 이렇게 잘 쉬는 시간이 또 올까 싶을 정도로 잘 쉬었지요.

쉬는 동안은 지나간 시간도 돌아볼 일이 없었습니다. 당장 오늘의 몸을 살피고 내일의 몸을 걱정하거나 기대하는 시간이었거든요. 그래서인지 단식농성을 했던 시간은 마치 뭉텅 잘려나간 것처럼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쩌면 그렇게 생각이 나지 않을까?” 친구가 말했습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못해서 그런 거 아냐?”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녹녹치 않은 조건이었지만 ‘나중에’의 무한 반복을 멈춰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쯤 되면 해볼만도 하지 않느냐는 의지로, 함께 뜻을 모아 시작한 단식농성이었습니다. 국회 앞에서 함께 열어온 평등의 봄은 찬란하기도 했습니다. 서로를 동료로 초대하는 시간, 그렇게 마주치며 또다른 가능성들을 움틔우는 시간, 그간 쌓아온 힘들이 더욱 단단하게 더욱 너르게 새 몸을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 제정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된 시간. 그걸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지 모르겠더군요.

복귀를 앞두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예전과 같은 일상에 몸이 잘 버틸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내가 보낸 시간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지 막막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회복에만 집중하며 보낸 시간 동안은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내 몸을 잘 지켰고 잘 버텼다는 뿌듯함 같은 것. 어느 순간 그걸 누구와 어떻게 함께 했는지 살피기를 놓치고 있었더라고요.

제가 쉬는 동안 몸살을 앓았을 동료들의 시간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저마다 낼 수 있는 힘을 보태며 지어올린 시간 끝에 앙상하고 초라한 공청회 소식 하나가 당도했을 때, 이대로 끝내기는 억울하지만 마냥 이어가자고 말할 수도 없어 서러웠을 때, ‘정치의 참담한 실패’를 마주한 만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투쟁이 더욱 무겁게 느껴질 때, 화도 나고 우울하거나 무기력해지곤 했던 시간. 사랑방에도 함께 풀어야 할 숙제들이 점점 쌓이는데, 쌓아둘 수도 치울 수도 없어 난감하고 힘겨웠던 시간들이 있었고요. 이따금 연락할 일이 생기면, 회복에만 집중하라고 말해준 동료들이 그 마음들을 겪어준 덕분에 저는 조금 비껴서 쉴 수 있었습니다.

복귀하고 일주일쯤 지나니 보지 못했던 숙제들도 보이고 모두에게 던져진 질문이라도 내가 더 감당해야 하는 질문들도 보입니다. 충분히 회복된 것 같았는데 이틀 출근하니 일주일 야근한 것처럼 피곤해진 몸도 걱정거리고요. 하지만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시간을 보내지만 그걸 모두의 시간으로 만들어왔던 게 ‘동료’라는 관계였던 걸 기억해낼 수 있었습니다. 몸으로 싸운다는 감각이 어떤 것인지 아직 다 모르겠지만 어떤 관계 속에서 몸이 움직이는 감각이라는 걸 막연하게나마 알 듯합니다.

쓰다 보니 알쏭달쏭한 이야기로 들리기도 하겠네요. 제가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평등에 도전하는 운동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고민도 있지만,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내가 살아가는 시간에 대해서, 함께 하는 관계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거든요.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느끼고 있어요. 차근차근 다시 쌓기 시작해야 할 시간이라는 느낌. 비워야 할 것들을 비우는 것부터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단식농성은 지금까지와 달라야 할 이유도 확인시켜줬지만 지금까지와 다를 수 있겠다는 기대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소소하게는 요가를 하면서 몸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경험도 그랬습니다. 방향을 정하고 꾸준히 한다면 무엇이든 새롭게 길을 낼 수 있다… 천천히 가봐야겠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p.s. 단식농성 기간 여러 방식으로 몸과 마음을 내어 함께 했던 분들, 단식농성 이후 걱정과 위로를 담아 회복을 빌어주었던 분들 모두에게, 이 지면을 빌어 감사 인사 전합니다. 덕분에 잘 복귀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