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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잘 쉰 걸로 할래요

 

  

 

 

<짓기와 거주하기>(리차드 세넷) 책 표지에 눈이 팔렸다.
적당히 선을 옮겨 그리고 색을 입혀 보았다.
책이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던,
책읽기 말고도 할 게 있던 시절이었다.

 

저는 추위를 많이 탑니다. 그런데 이번 겨울은 그렇게 힘들지가 않더라고요. 속으로 생각했죠. 몸이 추위를 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추위를 먼저 탔던 게 아닐까, 나는 추위에 약한 사람이 아니었던 거야! 어느날 빨래건조대가 말했습니다. 해마다 열심히 챙겨입던 내복이 걸려있지 않더라고요. “너는 그냥 집 밖으로 안 나갔을 뿐이야.”

안식년을 마치고 복귀를 할 때가 가까워지는데 기분이 이상했어요. 아쉬운 마음이 들 거라 짐작했는데 두려운 마음이 들었어요. “나 사람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모르겠어.” 대화하는 법을 잊은 것처럼요. 1년 동안 대화를 이어간 사람이 다섯 명도 안 되더라고요. 첫번째 안식년 때는 좀 달랐습니다. 기타를 배우겠다고 소모임에 참여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사람들이 있었고, 공부를 해도 인권연구소 ‘창’으로 가서 함께 세미나를 했지요. 새로운 관계에서 다른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도 컸습니다. 나이 들어 친구 사귀는 일이 쉽지 않은데 친구도 생겼고요. 이번 안식년에도 그런 기대가 있었나봐요.

계획이 다 있었습니다. ‘음미체’를 할 거라고 자랑도 많이 했는데, 그 중 하나는 판소리를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일찌감치 검색해 공공 강좌를 신청했는데, 공공시설들은 코로나보다 빨리 닫고 코로나보다 늦게 열더라고요. 열 번도 넘는 개강 연기 공지 끝에 폐강 안내 메시지를 8월에 받았습니다. 안식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끝나버린 느낌이었습니다. 다행히 그 즈음 저는 수어 배우는 재미에 빠져 있었습니다. 수어 강좌도 겨우 열린 것이라 초급 수준이었지만 새로운 언어와 세계를 만나게 된 느낌이 행복했거든요. 8월을 못 넘기고 중단되었습니다. 일주일에 나흘씩 집 밖을 나갈 명분도 사라졌고요. 우스개소리지만, 자가격리를 2주 했는데, 격리와 해제 사이의 차이가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갈 수 있냐 없냐더라고요. 

 

코로나19 소식은 신문으로 읽었다.
확산 초기, 세계 여러 도시에 야생 동물이
출현하고 있다는 뉴스에 눈길이 갔다.
코로나19가 얼마나 갈지,
코로나 이후의 세계가 어떨지,
추상적이기만 할 때였다.

 

복귀를 할 즈음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잘 쉬었어?” 음, 음, 음… 어쩌면 두 배로 쉰 셈입니다. 안식년이라 쉬는데, 코로나로 더 쉬게 되었던 거죠. 여행도, 뭘 배우는 일도, 사람 만나는 시간도, 어떤 식으로든 기운을 쓰는 일인데 못하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게, 쉰 것 같지가 않았거든요. 무언가 하지 못했다는 기억만 크게 남아있고요. 아무 일도 안해도 되니 복에 겨웠어야 할 안식년, 아무 것도 못해서 쉬지 못한 느낌. 설명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쉰다는 게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는 데 달린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시간을 내가 온전히 다스릴 수 있느냐, 이것이 ‘쉼’의 의미더군요.

복귀를 하고 나니 적응도 순식간이었어요. 시간 맞춰 사무실 나가는 게 자연스럽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는데 어제 앉았던 자리인 듯하고, 회의를 하는데 지난주에 만났던 사람들인 것 같고, 다이어리에 일정이 차는데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실에서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는 것도! 동료 한 명이 같이 남아 일을 하길래 집에 가는 길에 맥주 한 잔 하자고 제안했어요. 컴퓨터를 끄고 일어서면서 깨달았습니다. 밤 10시면 가게가 모두 문을 닫는다는 걸요. 9시가 넘어서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1년 동안 사무실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이제, 잘 쉰 걸로 할래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오래 동안 함께 한 식물들을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물 줘야 하는 날을 챙겨 살피던 것과,
언제 물을 주면 좋을지 살피며 챙기는 것은
많이 달랐다.

 

활동하는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속에서 ‘만나고 싶다’는 마음보다 ‘만나도 될지’를 묻는 게 더 익숙해져버렸지요. 안식년 동안 사람과 장소와 새로운 일들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는데, 누군가는 ‘만나도 될지’ 물을 새도 없이 만나고 일하고 부딪치고 겪어야 하는 시간을 보냈다는 걸 새삼 되새겼습니다. 재난 속에서 그나마 시간을 다스릴 수 있는 복을 누렸다고요.

그러고 보니 그 시간들이 남긴 것이 많았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었고 원할 때는 미련없이 덮었고, 청탁도 마감도 없는 글을 쓰고 싶을 때 쓰다가 쓰기 싫으면 접었습니다. 마카 드로잉 수업을 몇 주 듣는 동안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고 지치면 내려놓았습니다. 아이쿠, 떠올리기 시작하니 이것저것 계속 떠오르네요. 여전히 시름 쌓이는 시절, 민망하니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아쉬우니 그림 몇 장만 자랑하고요. 이렇게 2020년 잘 쉬고 상임활동가 미류로 복귀했습니다!

 

한 해 전 다녀온
어느 섬의 절벽에서 바라본 바다.
여행을 가지 못하는 상황이
그렇게 아쉽지만은 않았는데,
그림이 아쉬움을 덜어줬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