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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생계를 함께 책임지는 조직

어디서 온 자만심이었던 것일까? 나에게 건강 문제는 찾아오지 않거나 먼 미래에나 찾아오는 문제인줄만 알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프기 시작한 발목이 낫지 않는다. 아니 점점 심해졌다. 전조는 있었다. 수년전 운동을 하다가 발목을 다친 적이 있다. 그때부터 이미 아프기 시작했지만 치료를 시도해도 낫지 않자 포기하고 그냥 파스를 붙이고 지냈다. 그래도 일상에서 크게 불편하지 않았기에 생활습관은 그대로 유지한 채 쭉 지냈다.

한계에 도달한 것일까. 발목이 비명을 내지르듯 강도 높은 통증이 찾아왔다. 병원에 갔더니 MRI를 찍어보자며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통증 그 자체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당혹스러움이 더 컸다. 검사 결과 다행히 수술은 피할 수 있었지만 이미 만성화된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일상이 달라져야 했다. 재활 운동을 꾸준하게 진행하고, 체중을 줄이기 위해 식이요법도 병행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는 생활이 더해졌고, 장시간 서있거나 걷게 되는 활동은 대폭 줄였다.

만성화된 통증. 이 애매한 증상은 나의 마음을 좀먹었다. 딱히 불가능한 것은 없지만, 모든 행동이 불편했다. 몸의 변화로 일상을 다르게 만드는 것 자체가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생활패턴의 변화는 내 몸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간관계, 사회적 관계를 포함한 ‘생활’ 자체를 다르게 만들었다. 친구도 만나지 않았고, 활동도 적극적으로 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몸의 한계를 쉽사리 인정하기에는 내가 그렇게 나쁜 습관으로만 살아온 것인가 싶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가라앉지 않는 통증은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의 복귀가 언제 가능할지 점칠 수도 없게 했다.

이럴 바에야 활동을 중단하고 아예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사랑방에 이야기를 꺼냈다. 반은 그만둘 각오, 반은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마음이었다. 생계를 함께 책임지는 조직을 자처하는 구성원의 각오는 이런 것일까. 우울한 마음의 반전은 동료들의 반응에서부터 나왔다. 사랑방의 동료들은 무엇보다 나의 건강 상태를 꼼꼼하게 들어주었다. 그리고 사랑방의 동료들과 나는 무엇을 같이 나눌 수 있는지, 무엇을 내가 혹은 조직이 책임질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가졌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며 무너져가고 있던 마음이 조금은 다시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했다. 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동료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조직의 형편, 서로의 형편을 뻔히 알기에 검사비나 치료비가 많이 나오는 것을 덜어줄 수는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여기에 사랑방 같이 작은 조직에서 한 명이 갑자기 활동의 양을 줄이면 다른 조직의 구성원이 감당해야하는 몫이 그만큼 커지는 제로섬 관계에 놓여있다고 생각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작은 조직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완전한 착각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운동하려고 만났지, 친구하려고 만난 것은 아니잖아.”라고 말한 사랑방 활동가가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맞는 말이지만 참 차가운 말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나의 몸과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운동하려고 만난 것이 맞다면, 그 운동은 어떤 운동인가. 사랑방의 <운동원칙선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활동가의 지속 여부는 조직의 지속 여부와 동일하다. 때문에 조직은 활동가의 생계를 개인의 책임으로 맡겨두지 않으며 공동으로 책임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이어가기 위해 동료에게 기꺼이 곁을 내주는 운동을 하겠다는 것이 사랑방의 운동 원칙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랑방이라고 물리적, 재정적, 조직적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을 수 없다. 하지만 사랑방이라는 조직 안에서 만드는 신뢰와 관계를 통해 새로운 방향을 찾아나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 사랑방의 운동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덕에 차가운 줄 알았지만 사실은 따뜻한 동료들의 곁에서 활동을 이어가야겠다고 다짐하는 요즘이다. 이 기회를 빌려 고마움을 전하며- 이 동료들과 ‘빠듯하지만 뿌듯하게’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10월부터 예정된 후원인 모집사업이 꼭 잘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고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