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내일 세상 종말이 온다는데 사과나무는 왜 심나

요즘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엄청 오래 전 일이었던 것 같은데, 1년도 안 된 일들이 대부분이다. 상임활동가들과 한탄강 래프팅을 했던 게 몇 년 전인 것 같은데 작년 6월이고, 기후위기비상행동도 꾸려진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이제 1년이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은 게 올 초라니! 다이나믹 코리아답게 너무 많은 이슈와 사건들이 벌어지고 또 그게 너무 빠르게 지나가니, 불과 몇 달 전 일인데도 아득하게 느껴진다.

 

근데 올해는 좀 심하다. 약간의 피로감과 함께 정말 많은 일들이 아득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코로나 때문이다. 감염병으로 사회 전체가 큰 영향을 받고 사람들의 일상이 달라지는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으니, 뉴스들이 쏟아졌다. 너무 많은 일들과 너무 많은 말들이 넘쳐났고, 너무 많은 이들이 힘겹게 이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그러니 이 틈바구니에서 내가 느끼는 시간의 밀도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의 밀도만 다른 게 아니다. 그렇다. 우울하다. 사랑방 활동가들은 나에게 ‘코로나 블루’라고 한다. 다른 이들에 비하면 내 일상에 그리 큰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답답한 것도 아니다. 다만 세상이 확실히 살기 힘들어졌다는 생각, 느낌이 점점 분명해져서인 것 같다. 인간은 현재보다는 과거에 대한 추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로 살아가는 생물이어서인지, 어떤 ‘기대’를 하기 어려운 지금 상황은 나를 우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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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의 기분, 느낌을 실재로 만든 건 BBC·HBO 드라마 <이어즈&이어즈>(Years&Years)였다. 브렉시트 이후 10여 년 동안 근 미래 영국 사회의 변화를 담아낸 이 드라마는 마치 나에게 이게 도래할 세상의 모습이라는 걸 정확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 이미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모아서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 동안 애써 외면해 왔지만 지구적 문제들은 분명 조만간 한국 사회라는 지평 안에서 벌어질 게 분명하다. 기후위기로 침수지역이 늘어나서 이재민들에게 남는 방을 내줘야 하는 ‘침실법’, 계속되는 이주민들의 유입과 이들에 대한 집단수용, 미중갈등으로 인한 핵폭발, 감염병의 창궐, 경제붕괴로 인한 뱅크런과 실직, 저소득층 주거지에 대한 봉쇄정책까지. 어떤 것은 이미 현실이 되었고, 어떤 것은 진행형이다.

 

코로나 이후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나라가 벌써 80개국이다. 이제는 보수 세력도 섣부른 희망을 말하지 못한다. 전 세계가 돈을 시장에 쏟아 붓고 있는 현재, 상황의 심각성과 위기를 외면하면서 자본들은 조금이라도 돈을 더 얻어내기 위해 혈안이다. 세계경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지만 그게 내 통장과 무슨 상관이냐며 이번 기회에 한 몫 잡자며 주식시장으로 부동산시장으로 모두들 몰려든다. 시스템이 점점 무너지고 있는 게 분명한 지금, 우리는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면 기존 시스템은 해체되어야 하는 게 분명하지만 도리어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니, 우울할 수밖에 없다. 일단 당장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차분히 열심히 하자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냥 나는 ‘이런 시대’를 살다가 가는 그런 사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 우울하다. 예전에는 나에게도 세상은 나아질 거라는 막연하지만 순진한 희망이 분명 있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