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보험

세주

인생에 보험이 있을까 싶습니다. ㅜ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를 탈출시켜줄 그 무엇이 보험이라 한다면 결국 스스로 잘 지키는 나의 건강?(^^;;)

잠깐 삼천포로 빠져보자면 과거에는 장애가 있으면 각종 보험 가입이 불가 하였습니다. (자동차 보험은 제외! 이건 법적으로 가입 의무가 정해져 있어서인 듯합니다.)한창 보험 스팸전화가 유행일 때 설명을 잘 듣고 마지막에 장애인도 가입 가능하냐고 물어보면 갑자기 조용히 전화가 먼저 끊겼던 기억이ㅋㅋㅋ 특히 암보험 같은 것도 인수거부를 했는데, 장애가 있으면 암 발병률이 확 높아지는 것도 아닐 텐데, 지금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차별철폐!!!!! 운동으로 지켜야죠. 건강도, 차별철폐도!!!

아해

보험. 위험성에 근거하여 많은 사람이 미리 공통준비재산을 형성하여 사고 시에 사고를 당한 사람이 경제적 구제를 받는 제도. 그래서 자기 혼자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재해에 대비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보험이 아니란다.

 

(만화책을 통해 배운 ^^;;) ‘보험’의 구조는 생각보다 엄청 복잡했다. 위험률, 인수 등 쉬워 보이는 말 뒤에 어마무시한 구조가 있는 것은 마치, "세상사는 것은 이렇게 복잡한 거야." 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 복잡한 인생 속에서 가끔, 나는 참 기댈 구석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인생의 위험을 인수해 줄 인생의 보험은 무엇일 수 있을까.

민선

올 한해 함께 했던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활동가 조사> 결과 보고회가 얼마 전 있었다. 관련하여 기사화 된 것을 검색하다가 '인권중심사람' 인권센터 개관 1년을 앞두고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활동가 인터뷰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됐다.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은 당신의 보험’이 기사 제목이었다. 인권이라는 가치를 지키는 인권활동에 대한 기부가 미래에 대한 보험을 드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였다. 보험은 ‘상품’처럼 구매력이 있는 이들이 사는 개개인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개별적으로 각자도생하기 위한 조건이 아닌 서로를 지키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을 위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운용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 물질적인 것은 기본적으로 중요하지만, 서로를 뒷받침하고 이끌어줄 수 있는 관계처럼 물질적이지 않은 것들도 상상해보게 되더라.

내 인생의 보험이라면 역시 친구들. 내일 당장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상상했을 때 비비적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떠오른다는 것만큼 마음 평온해지는 건 없는 것 같다. 그 친구들 역시 나에게 어떤 형태로든 비비적댈 거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호혜적인 관계가 주는 물리적인 안정감. 독립과 자율을 중심에 두고 그걸 지키기 위해 온 시간과 에너지를 썼던 시간들에서 나도 이동했구나 싶은 순간이다.

디요

교통사고로 보험비를 받고, 여행자 보험으로 보상을 받아본 적이 있다. 그러고 나니 주변에서 보험료 잘 받는 사람의 이미지가 조금 있었다. 나도 내가 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보험이란 것, 너무나도 어려운 녀석이었다. 괜한 조언으로 난처해졌던 동료에게 이 자리를 빌어 위로의 말을 전한다.

어쓰

매달 내는 실비보험료가 문득 아깝다고 느껴진 날, 자리에 앉아 계산을 해봤다. 한 달에 한 번 내는 이 돈을 일 년간 모으면 얼마, 오 년간 모으면 얼마... 그렇게 계산하고 나니 아까운 마음이 더욱 커졌지만 보험을 해지하지는 않았다. 역시 보험의 효능은 실익뿐 아니라 마음의 안정이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과 함께.

가원

모친이 들어준 보험 외에 가입한 보험이 없다. 모친은 꽤나 오랜 기간 해당 보험료를 대납했다. 어느 시점에선가 모친은 보험료 납입을 내게 넘겼다. 나는 그제야 화가 났다. 왜 동의도 구하지 않고 내 보험에 가입했느냐 따져 묻자 모친은 나를 배은망덕하다 했다. 해당 보험을 납입한지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모친도 나도 보험의 내용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보험이란 무엇인가.

정록

10년 전에 실비보험을 들었다. 별 생각 없이 들었는데, 꽤 혜택을 받았다. 그렇게 많이 아플 나이도 아닌데, 벌써 실비보험 혜택 운운하다니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