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실태조사>에 함께 하고

“위기의 0년차” “언제까지 활동할 수 있을까” “인권활동가라는 옷이 내게 안 맞는 건 아닐까” 인권활동가로 살아가는 사람들,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들어보거나 해보았을 법한 말들이다. 나도 그랬다. ‘위기’라는 말에 딱 들어맞지는 않아도 인권활동가라는 이름표는 무거웠고, 그만둬야 하지 않나 스스로를 향한 물음이 올라오면 삼키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 무게와 질문이 얼마나 어떻게 같거나 달라졌는지 별로 생각해보지 못한 채 어느덧 10년차 인권활동가가 됐다.

 

올해 ‘인권재단 사람’과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가 공동으로 진행한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활동가 실태조사>에 함께 했다. 2015년 <인권활동가 활동비 처우 및 생활실태 조사>를 재단에서 진행한 바 있었다. 이미 알고 있던 것이기도 하지만,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우리’들이 처한 열악한 물적 기반을 숫자로 확인하게 된 계기였다. 조사결과는 이렇게 회자됐다. ‘인권을 말하지만 인간다운 삶은 살지 못하는 인권활동가들.’ 2015년 최저임금은 월 116만6220원, 인권활동가 평균 월 활동비는 107만원. 사랑방도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활동비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거다. 경제적인 요소는 먹고 살아가기 위한 기본이긴 하지만, 숫자로 활동조건의 열악함만 강조되는 게 씁쓸하기도 했다.

 

활동의 지속을 결정짓는 게 경제적인 조건만은 아니기에 활동을 지속하거나 지속하기 어려운 이유를 좀 더 너르고 다층적으로 살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조사’로 이름을 붙였다. 첫 회의 때 이번 조사를 함께 하며 갖는 기대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었다. 지속가능에 대한 고민을 다르게 표현하면 ‘즐겁고 함께 하고 싶은 인권운동은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질문과 같다고 생각했다. 동료활동가가 떠날 때의 안타까움, 새로운 활동가가 없다는 초조함, 언제까지 활동할 수 있을지 나의 노후는 어떨지 떠올릴 때의 막막함, 그럼에도 오늘 인권활동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기도 한 뿌듯함. 구체적인 경험과 감정들을 나누면서 개인과 조직을 넘어 인권운동의 동료인 우리의 현재와 과제를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버티거나 떠나거나 그 사이를 고민할 때 100% 개인적인 이유란 없다. 그 사이들을 잇는 고민이 필요하고 그럴 때 조직과 운동에 요구되는 몫도 있다. ‘지원’만으로 채워지는 것도 아니고 요술봉 휘두르듯 어려움을 한 번에 싹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매년 열리는 인권활동가대회에서도 지속가능한 활동과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눌 기회들은 있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시민사회 안에서 관련한 고민과 과제가 이야기되는 흐름이 이어졌다. 그간 쌓여온 이야기들은 활동 따로 삶 따로 일 수 없다는 것, 활동하는 의미만큼 안정적인 생활, 평등한 관계, 민주적인 조직문화 또한 중요하며 이것들이 별개의 요소가 아니라 서로 맞닿아있다는 것을 향해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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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전에 진행했던 조사가 활동비 처우 등 경제적인 조건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조직문화, 역량 욕구 등 지속가능을 위해 요구되는 다양한 조건을 살피고자 설문 문항을 구성했다. 71개 단체, 125명 활동가가 설문에 참여하였고, 심층인터뷰로 20명의 활동가를 만났다.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임의단체로 운영하는 비중이 높고, 재정규모가 작아서 사무공간이나 상근활동가 수에 제약이 있고, 평균 활동비는 여전히 최저임금 기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2015년과 비교할 때 많은 단체들에서 활동비를 최저임금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 조직문화에 대한 점검을 하고 있고, 인권활동가로 다양한 역량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75%가 인권활동을 지속하고 싶다고 했는데, 지속가능하기 위해 갖춰져야 할 조건으로 높게 꼽힌 ‘활동을 통한 성취감과 만족감’, ‘서로에게 힘이 되는 동료관계’에서 그 이유를 연결 지어 생각해보게 된다.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고민할 때 경제적 조건의 개선만이 아니라 인권활동가로서 나/우리에게 필요한 역량을 채워가고, 인권 있는 인권 조직/운동을 위한 관계와 조직문화를 구성해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고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활동연차, 분야, 지역, 단체특성, 성별, 연령 등을 고려해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인권활동가’를 어떻게 규정하는지부터 개인과 조직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들을 수 있었다. 어려움에 대한 토로만이 아닌 이를 개선하기 위한 개인과 조직의 여러 노력과 시도를 들을 수 있었는데, 공통적으로 교류와 공유라는 네트워킹을 강조했다. 규모가 작다는 조건에서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혐오에 맞서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지역별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서 함께 해온 시간이 소중하고 힘이 된다는 것이다.

 

11월 28일 보고회를 열어 이러한 내용들을 함께 나누었다. 토론을 통해 인권교육이 제도화되고 있지만 그 ‘자격’의 범주에 인권활동가들이 들지 못하는 상황처럼 인권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필요성, 재정이 불안정하고 한 때 하고 마는 운동으로 운동사회 안에서도 다르게 인식되며 이런 조건에서 사람이 이어지기 더 힘든 ‘청소년인권운동’의 어려움, 10월 진행된 시민사회 공익활동가 실태조사 결과와 비교할 때 인권활동가 조사 결과에서 보이는 특징 등이 이야기됐다. 2015년에 이어 두 번째 조사가 진행된 것인데, 당장 시도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건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로 요구해야 할 것도 있고 사회의 변화와 동반되어야 할 것도 있는데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인권운동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면 좋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어려움을 단번에 없앨 수 있는 요술봉은 없고, 어려움은 다른 조건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하기도 한다.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의 조건이 ‘정답’처럼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 인권활동가로 활동하고 살아가며 느끼는 자긍심과 불안을 나누는 과정이 그러한 조건이 뭔지를 묻고 채워가는 시간이 되는 게 아닐까. 옆에 있는 동료들이 새삼 궁금해지면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