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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소규모’ 화학사고 막을 수 있을까요

지난 8월 8일 시화공단의 한 공장에서 염산이 유출되었다는 뉴스가 월담 활동가들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에 공유되었습니다. 폐업한 공장에서 8일 새벽 1시경 염산이 유출되었다는 신고가 있었지만,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기사를 읽고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후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월담에서는 손을 놓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직접 그 공장을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사건의 경과

월담에서 파악한 경과는 이렇습니다. 시작은 약 2년 전, 한 전자기계 부품을 만들던 업체가 폐업하면서부터입니다. 해당 업체는 폐업했지만 공장에는 약 400L의 염산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렇게 염산과 함께 방치되어온 공장이 최근에야 새로운 업체에 인수되었습니다. 염산 유출은 기존 업체의 설비를 새 업체에서 철거하던 시기에 발생한 것이죠. 하지만 새벽에 해당 공장에서 철거작업이 진행되진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은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8일 새벽, 유출된 염산이 공기와 접촉해 가스를 생성하자 야간작업을 하던 주변 공장의 노동자들이 문제를 알아차리며 신고한 시간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신고를 접수한 시흥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이하 방재센터)에서는 새벽에 현장에 나와 염산가스 농도를 측정했다고 합니다. 단지 수치가 높지 않고, 추가 반응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으로 판단해서 긴급 작업을 진행하지 않기로 한 것이죠. 그렇게 새벽을 넘겨 8일 오전 11시 염산 수거 및 제염 작업이 시작되지만 20분 만에 다시 염산가스가 발생하면서 ‘2차’ 반응이 발생합니다. 그제야 대피명령이 떨어지고, 언론에도 보도된 것이었죠.

 

알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현장

월담이 사고 현장을 직접 찾아갔을 때 가장 먼저 놀란 점은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흔히 공단에서 캠페인이나 선전전을 하면서 ‘노동자 권리’같은 이야기를 꺼내면 공단의 사장들은 대놓고 꺼리기도 하고, 관심을 보이는 노동자를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요.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몇 마디 말을 붙이면 사장이든, 노동자든 사고 당일 경험부터, 본인의 건강 상태, 업체의 손해 정도 등을 상세하게 말씀해주시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많은 화학 사고들이 그렇듯 이번 염산유출 사고에서도 피해는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데 반해, 그에 걸맞은 상황 공유와 대응 과정, 정보 등은 제대로 전파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염산가스가 최초 발생할 때부터 방재센터는 주변 노동자나 주민에게 사고 내용을 알리지 않은 것은 물론, 2차 반응이 발생한 이후에도 방송차량을 통한 대피 명령을 전파하는 데 그쳤습니다. 현장의 노동자 중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한 정보는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분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사고 현장 주변에 이주노동자 기숙사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생각하면 방송차량을 통한 대피 명령이 무척 제한적으로 전파되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습니다. 또한, 염산가스로 때문에 신체 반응이 나타나거나 공장의 부품들이 망가지는 등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보상 대책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현장의 노동자들은 저희라도 붙잡고 상황을 알리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이었죠.

 

허술한 대응체계, 부실한 관리체계

현장을 방문한 이후 월담에서는 염산 같은 위험한 물질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해도 왜 체계적인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지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화학물질관리법 등 법제도를 살피고, 사고 지역을 관할하는 시흥시 환경과와 방재센터에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면담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이번 사고와 같은 일이 시화공단에서 1년에 1~2차례 꾸준히 발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해도 특별한 기준 없이 ‘소규모 화학사고’로 규정된다는 점이었는데요. 그렇게 되면 사고수습본부가 즉각적으로 꾸려지지 않고, 화학물질 유출 사고 대응 매뉴얼 적용 기준에 축소 적용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번 염산유출 사고 역시 사고를 규정하는 기준부터 분명치 못한 대응체계의 허술함이 그대로 반영된 사고였던 것이죠.

대응체계만이 아니었습니다. 정부의 화학물질 관리체계 역시 부실하기 그지없었는데요. 기업에서 염산과 같은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전에 환경부에 신고하고, 해당 물질에 대한 관리 계획서를 제출하고 지역 사회에 알려야 합니다. 하지만 방재센터를 비롯한 환경부에서는 해당 공장에 있던 염산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유해화학물질을 다루고 있음에도 영세 업체라는 이유로 자진신고에만 의존해왔기 때문입니다. 염산을 사용하던 전자 업체는 처음부터 화학물질 사용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애초에 사용신고가 안 되니 폐업을 해도 400L나 되는 염산의 폐기처분 절차가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번 사고를 통해 유해화학물질이 어떤 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니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전국의 유해화학물질 사고가 납득이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예방은 권리다

언제까지 사고는 소규모로만 발생할까요? 아니 애초에 소규모라고 규정할 수 있기는 한 것일까요? 솔직하게 고백하면 저는 이번 공단의 화학 사고와 관련한 문제들을 살펴보면서 조금 깜깜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리부터 대응까지 부실한 소위 ‘소규모 화학사고’는 도대체 어떻게 막을 수 있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사람이 죽지 않더라도, 크게 다치지 않더라도 제도의 허점을 살피고 시스템을 돌아보는 계기를 월담과 같은 조직이 만들어야 한다는 버거운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달까요.

제가 조금 버거운 마음이 들었을지언정 암울해만 하고 있지는 않답니다. 어차피 정부와 기업이 스스로 자신들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런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 월담에서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지요. 그래서 지난 수개월 해당 지역 노동자와 주민들에게 안내할 소책자도 준비하고, 월담과 같이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노동자가 함께 대응할 수 있도록 고민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공단의 영세 업체 노동자의 권리, 지역 주민의 권리를 확장해 기업 운영의 효율을 넘어설 때 화학 사고의 예방도 가능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