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선 위에 함께 서서 넘을 날을 기다리며

장기수 붓글씨 전시회 ‘선(線) 위에 선(立)’을 마치고

4월 17일부터 30일까지 2주간 열었던 전시회가 잘 마쳤습니다. 예상보다도 많은 분들이 전시회를 찾아주셨어요. 휴관일인 월요일 빼고 딱 열흘, 200명이 훌쩍 넘게 와주셨던 것 같아요.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전시장 당번을 하고 있으면 보러오는 사람이 별로 없어도 시간이 휘리릭 가곤 했는데요, 심심하기도 하고 궁금해서 오신 분들에게 어떻게 오시게 됐는지를 여쭤봤어요. 몇 군데 언론 보도가 됐는데 그 기사들을 보고 오신 분도 계시고, 존경했던 선생님의 이름을 보고 반가워서 오신 분도 계시고,, 인사동을 지나가다가 ‘선 위에 선’이란 글씨가 강렬하고 인상적이라 오게 됐다는 분도 계시고... 가볍게 왔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됐다는 이야기를 건네주는 분들도 계셨어요.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에 새기듯 찬찬히 보는 분들을 보면서, 작년 이사하며 꺼냈던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끄집어내서 이렇게 같이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 참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이 전시를 함께 준비하기로 하면서 시작할 때만 해도 전혀 생각지 못한 소중한 것들을 많이 얻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글씨를 적어주신 선생님들과 이렇게 인연이 이어진 것은 무척 감사한 일입니다. 저희 전시회에는 아홉 분, 50여 점의 작품을 전시했는데요, 돌아가시거나 연락이 안닿는 경우가 아닌 선생님들 세 분께 연락드리고 만나 뵙게 되고 또 개막 행사에서 모실 수 있다는 게 참 벅찼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단체명을 써주셨던 오병철 선생님의 성함은 저희 단체 소개말에서 뵈었었지만 이렇게 직접 뵙게 될 줄을 몰랐어요. 검과 붓 두 가지가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다는 오병철 선생님이 지금도 검도관장으로 계시는 제심관을 방문하기도 하고요. 박성준 선생님을 찾아뵈면서 이름만 들어본 길담서원도 가보게 되고요. 전시를 준비하며 연락드릴 때 30여 년 전 감옥에서 썼던 글씨를 아직 가지고 있다니 깜짝 놀라시면서, 그때 썼던 글씨들을 다시 보고 싶어 하셨는데요, 그러면서 선생님들의 삶의 공간을 찾아가 그때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뭔가 벅차고 뭉클했습니다. 안승억 선생님은 멀리 안산에 사시는데 전시회 개막에 맞춰 한달음에 와주셨어요. 오랜 기다림 끝에 안동 일가족 간첩 조작사건이 5월에 재심이 열리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도 함께 전해주셨습니다.

전시회 준비를 시작할 때 준비팀에서 아홉 분 선생님들의 생애를 짧은 몇 줄로 정리했었는데요. 그게 너무너무 죄송스러웠어요. 사랑방 활동가들도 전시 시작 전에 함께 모여 관련된 영상자료를 찾아 함께 보기도 했는데요. 짧은 몇 줄 안에 결코 담아낼 수 없는 선생님들이 살고 마주해온 시간, 분단조국에서 다른 미래를 만들기 위해 생을 걸며 보냈던 시간들을 아주 조금이나마 헤아려보게 되면서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선 위에 선’이라는 전시회의 제목은 인권운동이 서 있는 자리,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저희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도 생각하게 됩니다.

 

21일에는 통일광장 장기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있었는데요, 90년대 전후 그때 장기수 선생님들의 ‘곁’을 지켰던 인권운동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장기수 선생님들의 고통은 여전한데, 판문점 선언 1년을 기념하고 남북관계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지금 인권운동은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됩니다. 해야 할 것들이 많겠지만 먼저 분단폭력이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공고히 작동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며 이를 어떻게 넘어설지 계속 고민하고 이야기를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여 년 전 작품들을 기증해주셔서 전시회를 열 수 있었던 것인데, 또 전시회를 하면서 후원도 많이 해주셨어요. 사랑방은 받은 것이 참 많은 단체구나 감사하면서도 빚진 마음의 무게가 있었는데요, 이번 전시를 하면서 이 자리가 열릴 수 있도록 지지와 지원을 해준 많은 분들, 그리고 이를 이끌어온 사랑방의 선배 활동가들이 우리의 ‘빛’이 되어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미안함보다는 고마움으로 이 시간들을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고통을 딛고 써내려간 선들이 새로운 희망으로 이어지길 염원하는 시간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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