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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 그 사람이 염호석이고 진기승입니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식당에서 항상 많은 사람을 마주칩니다. 사람을 마주치는 장소는 다양합니다. 무심코 찾아간 서점에서 다른 사람이 책을 고르는 걸 바라보며 나도 그 책을 사기도 하고, 술집에서 안주를 고르지 못할 땐 옆자리에서 먹는 안주 중 맛있는 걸 고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마주치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아침마다 타는 지하철엔 지하철노동자도 있고, 청소노동자도 있고, 출근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굴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떠한 표식을 통해 저 사람이 하는 일을 알기도 합니다. 출장 애프터서비스(이하 ‘A/S’)기사들은 조끼에 있는 로고를 통해서 알 수 있고, 버스노동자는 운전석 뒤에 얼굴과 하는 일이 고스란히 쓰여 있습니다. 그렇게 마주치는 사람들을 우리가 기억할 순 없습니다. 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 또한 특정한 누군가의 얼굴을 기억할 순 없습니다. 다만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떠한 순간의 사건에 따라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만난 적은 없지만, 떠오르게 되는 사람.#1

지난 5월 17일 정동진에서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염호석이었습니다. 삼성전자 서비스에서 출장 A/S기사를 하는 그 사람은 유언을 통해 자신과 동료들의 뜻이 이루어지는 날 장례를 치러달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는 우리가 잘 아는 삼성전자 제품의 A/S를 하는 곳입니다. A/S로 국내시장을 장악한 삼성답게 수많은 곳에 위치한 그곳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A/S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출장을 다니기도 합니다. 염호석 님은 그중 출장 A/S를 하고 있었습니다. 
삼성전자제품을 수리하지만 염호석 님은 삼성 소속이 아니었습니다. 비용절감을 위해 삼성이  삼성전자서비스라는 회사를 만들어 서비스노동자들을 모두 그곳에 소속시켰습니다. 비용절감을 이유로 한 만큼 이들 노동자의 삶은 열악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낮은 임금과 높은 노동시간을 참아야 했고, 출장을 다니며 스스로 밥을 사먹어야 했습니다. 삼성에서 자신들의 노동을 관리․지도하고 있지만, 삼성에선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삼성과 관련되어 있고, 삼성의 로고가 박힌 작업복을 입어 삼성의 신뢰도를 높여주는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삼성과 무관한 사람이었습니다.
언론을 통해서 다들 들으셨겠지만 염호식 님은 이러한 삼성의 부당한 상황에 맞서 싸우기 위해 삼성전자서비스노동조합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진짜 사용자인 삼성이 교섭에 나서라는 이들의 요구를 삼성은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묘한 방법으로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영업장을 없애고, 일을 주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조합원이 있는 사업장에 대한 탄압에 맞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싸워나갔지만, 삼성과 공권력은 이들을 더욱 심하게  탄압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염호석 님은 해가 뜨는 정동진에서 세상을 떠나며 삼성과 공권력의 부당함을 사회에 알렸습니다.
염호석 님의 소식을 듣고 작년 여름에 마주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전날 과음으로 인해 너무 늦게 일어난 토요일이었습니다. 속이 시끄러워 해장을 하러 간 중국음식점엔 식사시간이 지나서인지 사람이 없었습니다. 혼자 짬뽕을 시켜놓고 TV를 보는 와중에 한 사람이 땀을 닦으며 식당에 들어왔습니다. 차림새를 보니 출장A/S기사였습니다. 정확한 로고는 아니지만 모두가 알만한 기업의 로고가 박혀 있는 옷을 입고 들어온 그는 짜장면 곱빼기를 시켜놓고 계속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어디냐고 묻는 전화인 것 같았습니다. 지금 가고 있다는 말을 연신 이야기하는 그는 짜장면 곱빼기를 최대한 빨리 먹고 자리를 떴습니다. 그 사람의 땀 냄새와 전화통화를 하는 그의 목소리 때문에 한참 그를 보며 밥을 먹었습니다. 3시가 다 된 시간에 점심을 먹고, 그 점심조차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사라져가는 그의 모습이 기억나는 건, 아마도 그가 가진 감정이 저에게 조금이나마 전달됐기 때문입니다.


만난 적은 없지만, 떠오르게 되는 사람 #2

6월 2일 전주에서 진기승 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성여객의 부당해고에 항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지 33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서울에 있다 보니 전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의 소식을 담은 글을 인권오름에 올리며 그가 처했던 상황과 현실에 마음이 싱숭생숭 했었습니다. 부당해고로 죽으려한 그 앞에서 "내가 언제 죽으라고 했냐?"라는 망발을 날리는 사업주와 관리자들 속에서 일했던 그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야할지 속이 쓰렸습니다.
문득 가끔 타는 버스의 뒤편이 생각났습니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면 운전석 뒤에 버스기사님의 얼굴과 해야 하는 일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객과의 약속이라며 '과속을 하지 않습니다.' '운전중 핸드폰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말 등이 쓰여 있었습니다. 평소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진기승 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기사님들이 한 약속이라는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자신도 안전운전을 하고 싶지만, 배차간격에 늦게 되면 받게 되는 압박으로 인해 어쩔 수없이 과속과 난폭한 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저는 그가 왜 과속을 하는지 보다, 이 아저씨 왜이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회사로부터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 지보다 그냥 저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진기승 님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버스노동자들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임금체불과 노조탄압, CCTV를 통한 노동감시 등 그들이 놓여있는 노동환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배차시간에 맞추라며 그들을 괴롭혔을 회사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고객과의 약속위에 붙어진 그들의 사진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사람의 얼굴을 기억할 순 없겠지만, 그 이미지라도 기억하며 버스노동자들이 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기억하기.

진기승 님이나 염호석 님의 사진을 보며 처음 본 사람이지만, 비슷한 얼굴은 많이 본 것 같았습니다. 아마 그건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속에 그들의 얼굴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 식당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그들은 한명의 노동자이기도 하고, 또한 저와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하나의 얼굴 속에 있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이 들리진 않지만, 누군가의 얼굴을 자주 마주치다 보면 그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들의 곁에 우리가 있을 거 같습니다.
 
*삼성본관 앞에서는 삼성전자서비스노동자들이 염호석 님의 뜻을 이어받아 거리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주에서는 버스노동자들이 승무거부투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