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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인권운동사랑방이 ‘좌파상업주의단체’가 된 사연

인권운동사랑방 북인권대응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네트워크와 함께 지난 4월 20일 유엔인권최고대표 사무실(The Office of 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OHCHR)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에 대한 NGO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아시다시피 2006년에 유엔은 기존의 인권위원회(Commission on Human Rights)를 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uncil)로 확대·개편한 후 새롭게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 제도(Universal Period Review, UPR)를 도입했어요. UPR 제도는 기존의 국가별 인권보고와 결의안 제도가 인권에 대한 이중기준과 정치성 등의 비판에 직면하면서 유엔에 가입한 모든 나라의 인권상황을 검토하는 제도입니다. 모든 국가들이 인권 보장의 의무를 지닌다는 점에서 UPR 제도는 이전보다 좀더 개선된 제도로 보여요. 한국의 경우 지난 2008년 UPR 보고서를 검토했고, 북한의 경우 2009년 하반기 제6차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 회기에서 검토될 예정입니다. 이에 사랑방을 비롯한 3개의 평화·인권단체들은 진보적인 인권의 시각에서 ‘북한인권’에 대한 입장을 담은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했습니다.

이번 북한 UPR NGO 보고서를 통해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기존의 보수적인 관점으로 형성된 ‘북한인권’ 담론을 극복하고, 한국의 진보진영이 생각하는 ‘북한인권’에 대한 담론을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해요. 뿐만 아니라, 유엔인권이사회를 통해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우려가 북한 정부에게 직접 전달될 수도 있겠지요. 

우리 보고서는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우리의 접근법을 알리고, △자유주의적인 인권관에 갇힌 인권개념이 아닌 보다 더 진보적인 인권에 대한 원칙으로 북한의 인권현실을 해석하고, △‘북한인권’ 현실에 대한 우리의 비판과 우려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정치적으로 압박하고 비난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권적인 방식으로 ‘북한인권’을 포함한 ‘한반도의 평화와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제안하는 것 등을 기본방향으로 하고 있습니다.(우리 보고서는 인권운동사랑방 인터넷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전체 내용을 볼 수 있어요. http://sarangbang.or.kr/bbs/view.php?board=data&id=412&page=1)

유엔에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 언론에도 알렸습니다. 그래서 꽤 많은 언론에 우리의 보고서 제출 사실이 실렸어요. 대부분 ‘어? 진보단체도 북한인권에 대한 보고서를 냈네?’하는 반응이었습니다. ‘북한인권’이라는 이슈가 워낙 보수단체들에 의해 독점되어왔던 터라 언론들은 진보적 인권단체들의 보고서 제출 자체를 뉴스거리로 삼았습니다. 내용에 대한 꼼꼼한 검토 기사는 몇몇 진보적 인터넷 언론을 제외하곤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4월 22일 <조선일보>가 발표한 ‘좌파 단체가 만든 ‘북한 인권보고서’를 읽어 보니’라는 제목의 사설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그동안 ‘좌파 단체’들이 북인권에 대해 취했던 태도를 비판하며, 우리 보고서의 일부 내용을 인용하면서 “좌파 단체들이 그동안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한마디라도 꺼내면 그것을 반(反)민족적 행위라도 되는 양 비난해 왔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문제점 지적도 평가할 만하다”고 아전인수 격으로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좌파 단체들이 북한 인권 문제에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더 이상 이 문제를 외면하기 힘든 상황에 내몰린 게 가장 큰 이유”라고 친히 보고서 제출의 원인까지 ‘발명’해주시었지요. 우리가 생각한 보고서 제출 이유와 많이 달라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말입니다. 몇 해 전 ‘북인권에 대한 대안적 접근’이라는 워크숍을 했을 때 <조선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에서 보였던 격렬하고도 감정적인 반응에 비하면 좀 힘 빠지는 반응이었어요. 그때는 심지어 ‘김정일 하수인’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거든요. 그러거나 말거나. 워크숍에 취재조차 오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우리가 어떤 내용으로 워크숍을 했는지 알 리가 없었겠지요. 자료집은 읽기나 했던 걸까요? 뭐, 어쨌거나. 그런데 이번 반응은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우리의 내용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면서 결국 자신들이 필요한 대로 끌어다 설명하는 그 놀라운 논리! <조선일보>이기 때문에 그리 새로운 일도, 또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몇 해 전의 반응과는 너무 달라 막상 당하고 보니 살짝 당황스러웠지요. 보수 언론들의 반응들을 보면서 난 가벼운 상념에 빠졌습니다. 결과적으로 보수 언론들이 우리에게 입에 게거품 물고 삿대질해대는 게 더 나은 걸까, 아니면 짐짓 고상한 척 하면서 궤변이나 늘어놓는 게 더 나은 걸까.

그런데 며칠 후 4월 26일 ‘[편집자에게] 우이독경(牛耳讀經)한 사설’이라는 대망의 칼럼이 <조선일보>에 또다시 실립니다. 경기 영어마을 장원재 사무총장은 이 칼럼에서 “(좌파 인권단체들에 대한 조선일보의) 충고는 소의 귀에 불경을 읽어준 것이나 비슷하다”고 <조선일보> 사설을 비판했습니다.(지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에헤라디야~) 그는 “좌파 인권 단체도 두 종류로 대별할 수 있다”며 그 두 종류가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극좌종북단체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좌파 상업주의 집단”이라고 주장했어요. 처음 들어보는 말들이 있어서 이해하기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의 주옥같은 말들을 좀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좌파상업주의자는 ‘시장친화적 경제인식’을 갖고 대의니 명분이니 하는 문제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밥벌이 수단으로서 인권문제를 의식하고 있다고 주장했어요. 그래서 북한인권 문제도 돈벌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 거라고. 대한민국은 잘못을 지적하면 돈을 내는 사람이 있고, 북한은 아무리 잘못을 지적해 봐야 돈을 내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저기요. 그런데 ‘북한인권’ 운운하며 미국 NED, 심지어 미 국무부 돈까지 받으며 돈벌이로 삼는 보수단체들은 우파상업주의자들인가요? 똑같이 ‘북한인권’ 이야기하는데 누구는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돈을 받고 누구는 돈 한 푼 못(안) 받는데 똑같이 상업주의라고 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가 보수단체들보다 장사를 못해서 그런 건가요?) 그런데 좌파상업주의자들은 ‘정의’의 생산 유통 및 판매에 대한 독과점 사업자라는 지위가 흔들릴 때만큼은 ‘진짜로’ 분노를 표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남들이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할 때 좌파상업주의자들이 ‘진짜로’ 분노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장원재 님이 좌파상업주의자들에게 붙여주신 캐치프레이즈는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생각은 좌파처럼 생활은 우파처럼’>입니다. 오오~ 이런 주옥같은 말씀을! 그러니까 인권운동사랑방은 좌파상업주의단체라는 말씀, 내가 맞게 이해한 거죠? 

이전 나의 가벼운 상념은 싹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래! 역시 <조선일보>! 뭔가 예상대로, 제대로 된 느낌이랄까요.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명박 정부에게도, 경찰들에게도 똑똑하게 말해놔야겠어요. 사랑방은 좌파상업주의단체이니 ‘빨갱이, 반정부’ 운운하며 잡아가지 말아 주십사, 고. 좌파상업주의단체이니 어차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고. 뭐, 그렇습니다.

<조선일보>의 기대와는 무관하게, 우린 그냥 우리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6월~7월 중에 유엔 북한 UPR 보고서와 관련한 토론회를 열어보려고 합니다. 그때 쯤이면 북한 정부도 유엔에 UPR 보고서를 제출했을 것 같네요.(확인해봐야 합니다만) 11월 말~12월 초에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 UPR 정부보고서와, NGO 보고서를 취합한 인권최고대표실 보고서를 함께 검토합니다. 그때 우리는 북인권에 대한 우리 보고서의 내용을 어떻게 국제사회와 북한에 잘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어요. 사실 우리가 이번에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가장 주의를 기울였던 부분은 ‘북의 인권 현실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좀더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엔의 UPR 제도라는 것이 어차피 인권현실에 대한 각국 정부의 인식과 시민사회의 인식이 부딪치는 공간이고, 북한 UPR 보고서 검토를 통해 북의 인권 현실이 좀더 나아지기를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인지(도대체 어떻게 하면 보고서로 돈을 벌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하네요...), ‘독과점 사업자’라는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반도의 평화와 인권을 증진하고자 진정성을 갖고 하는 것인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겠죠. 잘 모르겠다고요? 그럼 우리 보고서를 한번 봐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