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논평

[논평] 한미 전쟁훈련과 미국의 새로운 이해

다시 한반도 전역에 전쟁훈련으로 인한 공포와 불안이 번지고 있다. ‘북한군 격멸’과 ‘북한정권 제거’가 목적인 한미연합전시증원훈련(RSOI)이 지난 25일부터 한반도 이남 전역에서 실시되고 있다.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중무장한 미 증원군 1개 여단 참가 등 올해 RSOI 사상 최대규모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고, 알려진 바에 따르면 증원병력을 포함해 총 2만9천여명의 미군 병력과 일본에 임시 배치된 핵추진 항공모함(로널드 레이건호)과 F-117 스텔기 전폭기 1개 대대가 동원된다. 최첨단 무기와 중무장한 수만의 병력으로 ‘북한 붕괴 전쟁시나리오’를 그대로 재현하는 군사훈련에 대해 한국 정부는 방어훈련일 뿐이라고 발뺌하고 있다.

하지만 RSOI는 명백한 전쟁 시나리오의 일부다. 북한에 정밀타격(작전계획 5026)한 후 최첨단 대량살상 무기를 동원해 전면전(작계 5027)을 치루고 북한 전 지역을 점령한다(개념개획 5029)는 전쟁 시나리오 중 전면전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RSOI이다. 미국이 걸프전 당시 모든 전쟁준비를 완료(작계 1002)하고 전면전(작계 1003)으로 들어간 것과 흡사하다. 이러한 호전적인 군사훈련은 북한에게 은근하고 지속적인 위협을 안겨주면서 전시가 아닌 평시에도 ‘전쟁 효과’를 가져온다. 미국은 걸프전 이후 적에게 전쟁위협을 일상적으로 느끼게 하는 한편 훈련의 일상화를 통해 ‘전쟁불감증’을 조장하는 ‘저강도 전쟁’을 전략으로 삼아왔다. ‘훈련’을 앞세운 ‘저강도 전쟁’은 사실 전쟁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고,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에서 지속적으로 저강도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한반도의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하는 전쟁연습에 대한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만리포 앞바다로 들어서는 전차를 막아서는 평화활동가의 항의행동에 이어 올해는 전국 인권·사회단체들이 잇달아 RSOI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한미 공동훈련장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경기도 파주 무건리 주민들은 27일 집회를 열어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훈련에 반대했으며 전차가 드나드는 훈련장 입구에 말뚝을 박는 등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2.13 합의 이후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로 술렁거리고 있지만, 한반도를 언제라도 전쟁의 포화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대북 선제공격을 목표로 하는 RSOI는 민중들의 평화적 생존권과 양립할 수 없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미국의 전세계적 군사전략이 바뀜에 따라 한미 군사동맹 역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이후 또다른 전쟁위협은 보다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3월 7일 미 하원 청문회에서 팰런 태평양사령관은 RSOI, 독수리훈련과 같은 연합훈련이 대테러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다국적군의 새로운 훈련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군은 한미 군사동맹을 통해 이제 대북 선제공격뿐 아니라 중동 등 미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새로운 전쟁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은 한 편으로는 2.13 합의를 통해 한반도 평화로 다가가는 몸짓을 취하고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에 정반대되는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행위는 동아시아 관리전략의 변화를 보여줌과 동시에 변하지 않은 대북 붕괴전략 의도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2.13 합의의 완전한 이행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가 논의된다고 하더라도 한미 군사전쟁동맹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한반도 평화는 요원한 과제일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