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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베토벤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이 땅에서 문화생활을 즐긴다는 것은 돈과 시간,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한데 돈과 시간, 체력이 별로 없는 나에게 TV는 그나마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이다. 얼마 전 TV에서 방영된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고나서, 한동안 내 안에서 여운이 감돌았다. 무심코 리모콘을 돌리다가 보물을 발견할 느낌이랄까?!

♬여운 하나
중?고등학교 시절, 노래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따로 레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타고난 재능 탓에 합창단에서 반짝거리던 친구였다. 입시가 다가올 무렵 음악 선생님은 레슨을 받도록 추천을 했지만, 당시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조건이라 친구는 음대 진학을 포기했다. 나중에 친구는 응용음악 쪽으로 계속 공부를 이어갔다. 또 다른 친구는 정말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는데, 집안이 갑자기 망하는 바람에 인문계가 아닌 국악고등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다. 국악을 좋아하는 친구는 아니었는데, 이후 작곡 쪽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는 가난으로 혹은 재능으로 음악을 ‘프로페셔널’하게 지속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시립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활약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예고 실력(?)으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자 했던 사례, 전업주부로 살림만 하다가 자기 이름을 찾고자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자 했던 사례, 병이 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남고자 했던 사례, 밥벌이를 위해 살았지만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포기하지 못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었던 사례를 보면서, 현실의 무게에 눌리더라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그중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 내부 게시판 [마루]에 실린 베토벤 바이러스의 대사와 간단한 메모글을 인용한다. 
드디어 아마추어로 구성된 시립오케스트라가 첫 무대에 서는 날, 직장이 있는 사람들은 참석해서 연주를 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연습을 함께 해오고도 무대에서 데뷔를 하지 못하고 일터로 가려는 장근석(트럼펫 연주자)과 장근석을 음악의 세계로 부르려는 김명민(지휘자)이 나눈 대화이다. 

      장근석 : 꿈으로 그냥 놔둘 껍니다

      김명민 : 꿈 그게 어떻게 니 꿈이야 

      움직이지를 않는데 그건 별이지

      하늘에 떠있는 가질 수 없는 시도조차 못하는 처다만 봐야하는 별

      누가 지금 황당 무게 별나라 애기하재 

      니가 뭔가를 해야 될 거 아냐 조금이라도 부딪히고 애를 쓰고

      하다못해 계획이라도 세워봐야 

      거기에 니 냄새든 색깔이든 발라지는 거 아냐 

      그래야 니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

      꿈을 이루라는 소리가 아니야 꾸기라도 해보라는 거야 !!!


집에 티브이가 없어 잘 안 보는데 재미있는 것은 인터넷으로 나중에 본다. 
간만에 집에 일찍 들어가 본 <베토벤 바이러스>의 대사..가슴에 와 닿는다. 
'뭔가를 할 때 , 꿈을 부딪치고 시도할 때 꿈이며, 그게 꿈에 나의 색깔을 덧바르거라'는 말 나는 꿈을 꾼다 
'차별과 억압이 없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 한 끼로 겨우 연명하는 이가 없는 세상, 추운계절 지하보도에 돗자리와 신문으로 자는 사람이 없는 세상, 돈이 없어 약을 사용하지 못해 고통을 온 몸의 감각으로 느끼지 않아도 되는 세상 ' 
우리 모두의 꿈은 정말 꿈틀거려야지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꿈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모두 바쁘게 공부시간, 직장생활 하는 시간 쪼개고, 잠 못 자면서 활동하는 것일 게다. 
내 옆에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이들이 있어 좋다. -바람소리 [활동가 게시판 마루]중에서 

♪여운 둘
인권운동을 시작한지 10년차를 훌쩍 넘긴 나는 요즘 인권운동을 대하는 내 자신의 권태로움 때문에 좀 괴롭다. 하늘 아래 새로움이 없다는 말이 와 닿는다. 물론 부지기수로 쏟아지는 여러 이슈들에 대응하느라 정말 ‘쉴 시간’까지 쪼개면서 몸과 마음은 바쁘게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공허함이 밀려온다. 또한 ‘내 삶과 세상이 진보하는 걸까’ 라는 회의감이 올라오기도 한다. 내가 ‘의식하면서’ 내 삶과 운동을 선택해서 사는 시간보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닌지.... 아!~ 그 즘 <베토벤 바이러스>에 등장하는 인물을 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연주를 위해 사는 사람들의 반짝거림과 열정이 정말 바이러스처럼 나를 감염시킨다. 지휘자에게 실력이 없다고 타박을 받으면서도 계속 노력하는 그이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그들의 열정은 프로페셔널의 실력을 갖춘 이가 부럽지 않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하고 있는 정명훈 씨의 말을 들어보아도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다.
꼭 음악가가 아니더라도 삶을 대하는 자세를 얘기하는 내용이 내 마음을 움직인다. 

몇 년 앞까지 빼곡한 연주 일정,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어야 한다는 압박감, 지휘자로서 100여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 여러 가지 일들이 알게 모르게 나를 피곤하게 하고 부담스럽게 만들곤 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때는 음악이 그저 일로 생각되기 싶다. 청중은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연주자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음악과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연주한 음악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안다.
....... 그래서 음악가에게 ‘프로페셔널’이라는 것이 위험일 수도 있다. 음악이 일로 생각될 때마다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프로음악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해야 한다. 그래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프로페셔널이라도 정신과 마음은 아마추어인양 해야 한다. 『정명훈의 Dinner For 8』에서 

한국 드라마는 한 회만을 보아도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니, 이 가을 베토벤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행복한 가을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