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자원활동가의 편지 하나] 인권의 재/구/성

자원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째, 4월 9일, 16일, 25일 이렇게 세 번에 걸쳐 자원활동가 교육이 있었다. 여러 팀에 흩어져 팀 활동을 중심으로 자원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터라 자원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시간은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나에게는 잊혀져가던 S에 대한 기억을 다시 건져 올릴 수 있게 하였으니 더욱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아직도 이름 석자가 선명히 기억나는 S는 잠시 병원에서 일할 때 만나게 되었던 환자이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이름 석자가 정말 그의 이름인지, 누가 지어준 이름인지 알 길이 없다. 그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거대한 수용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이름조차 말할 수 없는 정신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숨쉬기 힘들어한다는 이유로 병원에 실려 온 그는 어디가 아픈지,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는 온몸으로 무언가 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시도하는 소통에 적절히 답할 수가 없었다. 그저 X-ray나 혈액검사의 결과를 확인하며 그의 상태를 추정하고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병원에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치료를 시도했다. 산소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으나 그는 얼굴의 반을 덮는 마스크를 씌우는 족족 벗겨내었고 아무리 말로 타일러도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항생제 주사를 맞아야 했으나 걸리적거리는 주사바늘을 곧잘 뽑아내버리기도 했다. 결국 병원에서는, 말을 할 수가 없어 괴성을 내며 온몸을 바둥거리는 그의 사지를 침대에 꽁꽁 묶을 수밖에 없었고 그는 그것에 항의하듯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는 이내 지쳐갔고 소리를 지르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소리를 지르다 지쳐 스르르 잠이 들고 잠에서 깨면 다시 소리를 질러내는 일이 반복되었으나 적어도 그의 유일한 항의수단인 ‘소리’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세상에 사람을 가둘 수 있는, 합법적으로 신체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직업은 두 개다. 하나는 판사고 하나는 의사다. 판사는 ‘죄인’을 ‘감옥’에 가두고 의사는 ‘병자’를 ‘시설’에 가둔다. 판사는 범죄를 없애기 위해 죄인을 가두는 듯하지만 그/녀들의 실제 역할은 ‘죄’를 구성함으로써 사회를 훈육하는 것이며 의사는 질병을 없애기 위해 병자를 가두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병’ 을 구성함으로써 사회를 관리한다. 이것은 직업윤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적 능력은 다른 방식으로 계열화된다면 전혀 다른 의미로 사회에 기여할 수도 있다. S는 말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면 기본적인 의사표현을, 어렵지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충분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면 적어도 그의 눈빛과 손, 발짓으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둘은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랬다면 저녁이 되면 모든 건물의 문을 걸어 잠그는 시설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병원에서의 당장의 고통을 이겨내고 퇴원한 후의 훨씬 아름다운 삶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본적인 생활과 의료서비스가 개인의 능력에 따라 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분배되는 사회였다면 그는 좀더 일찍 병원을, 가깝고 친근한 병원을 방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그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 아파하지만은 않을 수 있었을 것이고 언젠가부터 그의 소리에 무덤덤해져 가는 자신을 느끼며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자유권과 사회권 두 영역으로 구분하여 진행된 교육은 두 가지 권리가 구분되지 않은 것임을 강조하였다. 신체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과 건강할 권리, 적절한 주거환경을 보장받을 권리, 노동할 권리 등 ‘인간의 권리’라 이름 붙은 것들은 인간이 그 자체로 불가분의 통일적인 것이기에 당연히 구분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 전반에 걸쳐있는 다양한 권리들을 하나하나 구분하여 이름 붙이는 방식은, 아직 우리 사회가 인간의 존엄을 서로 장려하고 보호하지 못하는 탓에 형성된 방식일 수도 있다. 집 없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게다가 그러한 구조가 일상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데도 개별적 권리로 인간의 사적소유를 보장하는 의아함은 그런 방식이기에 가능한 것일 게다. 첫 시간에 ‘인권’하면 생각나는 것들을 이야기해보고 포스터로 만드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 모둠의 포스터 제목은 영화제목을 패러디 한 ‘인권의 재구성’이었다. 많은 고민들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사랑방 자원 활동을 해나가면서 놓치고 싶지 않은 고민을 하나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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