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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나’로 다시 태어나기

(김)영원
며칠 전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회의를 하러 갔었는데요. 명패에 저렇게 씌어 있더라고요. 저건 ‘성’을 쓴 것도 아니고, 안 쓴 것도 아니고 완전 ‘같기도?’ --;; 얼마 전부터 ‘성’을 안 쓰고 있는데요. 그걸 처음 공표한 자리가 바로 인권위 회의였거든요. 그랬더니 그 다음 회의에는 저렇게 써있더라고요. 허참! 아직 사랑방 활동가들에게는 이야기를 못했는데요. 사람사랑을 통해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해요.

호주제나 가부장제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활발해지면서 주변에서 부모 성을 함께 쓰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었는데요. 그때만 해도 그런 고민이 깊이 다가오지 않았고, 양쪽 성을 쓰는 게 마치 내가 페미니스트-나 페미니스트인가? 지향은 하고 있다오-라는 걸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아 약간 부담이 되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다음 세대는 그럼 4개, 8개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성을 써야 하는 건지, 그리고 부모 중 한 명이 처음부터 없어서 오로지 한 성만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 양쪽 성을 쓰는 게 오히려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까라는 어설픈 고민 때문에 선뜻 쓰지 못하고 있었지요. 물론 그렇다고 양쪽 성을 쓰는 게 의미가 없다거나 그런 사람들을 비판하는 건 절대 아니랍니다. 100% 대안적인 형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런 고민을 일상에서 전해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어째서 양쪽 성을 안 쓰고 성을 아예 뺐냐고요? 몇 년 전부터 부모님 집을 나와서 따로 살고 있고,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경제적·정신적으로도 완전히 독립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부모님은 전혀 그렇지 않나 봐요. 기회만 나면 결혼 안 할거면 집에 들어와서 살아라, 지금 하고 있는 일도 하지 말아라 등등 온갖 간섭을 다 하시려고 하거든요. 그럴 때마다 부모와 자식이 어떻게 하면 서로를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해 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되고, 그래서 이러저런 이야기를 해보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말다툼으로 끝나버리기 일쑤입니다. 결국 죽어서 부모·자식 간의 연이 끊어지지 않는 한 이런 관계를 끝내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절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 역시 기존의 부모·자식 간의 관계나 가족중심의 사고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실천 중에 하나가 바로 지금까지 써왔던 성을 빼는 것이었어요. 여전히 서류상으로는 성을 빼지 못하는 한계가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누군가 ‘성’을 쓰지 않는 이유를 물어봐 준다면 이런 고민을 나누면서 또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걸어봅니다.

쓰고보니 작은 일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 듯 하네요. 헤헤^^ 쨌건 그래서 말인데요. 앞으로는 저를 부를 때 그냥 ‘영원’이라고 불러주심 더 반갑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영원 여기 있어요~(친절한 금자 씨 버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