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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일하는 사람의 권리와 행복을 고민하며

따르르르릉~. 

“저.. 소민이 엄만데요, 지금 소민이 아빠가 병원에 계세요. 소민이는 병원에 안 왔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소민이 좀 부탁드립니다.”
공사장에서 일하던 소민이 아빠가 화장실에서 쓰러진 지 사흘이 지났을 즈음입니다. 소민이는 공부방에서 만난 아이였어요. 그날 저녁 내내 소민이는 기분이 계속 우울했나봐요. 그렇게 좋아하는 양념갈비도 잘 먹지 못하고……. 피곤한 나는 곧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소민이가 숨죽여 우는 걸 느끼고 가슴이 콱 막혔더랬습니다. 다음날 새벽 소민이 아빠는 끝내 가족의 곁을 떠나셨지요. 하루벌이가 끝나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과자 봉지를 건네던 소민이 아빠. 그런 아빠를 창피해 하고, 불쌍해하던 소민이…

      “혹시 대한극장 알아요?”

      “대한극장? 알지.”

      “대한극장 어떻게 알아요?”

      “대한극장 유명하니까 알지. 거기서 영화도 보고 그랬는데?”

      “유명하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극장이에요?”

      “아니 뭐 최고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거의 다 알지. 왜? 소민이는 대한극장 어떻게 아는데?”

      “우리 아빠가 대한극장 만든 사람이에요.”

      ……


그 다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소민이에게 대한극장은 아빠의 유품인 것을, 그때 난 그걸 몰랐습니다. 그저 노가다 아버지를 둔 소민이가 안쓰럽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소민이에 대한 기억은 서툰 첫사랑만큼이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인권교육실이 연대하고 있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자원활동을 시작한 지 어느새 몇 해가 지났습니다. 어쩌다 ‘노동인권’과 인연을 맺게 되어 지금까지 노동자 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여태도 나란 사람은 이렇다 할 정치적 신념도 없이, 운동이나 활동에도 소극적 태도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다만 ‘폼 나게 인권운동이나 해볼까’ 하고 문을 두드렸던 사랑방 첫 방문이 얼마나 개념없는 짓이었는지 느끼고 또 느끼고……. 요즘은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이 노동운동인지, 인권운동인지 그 경계도 흐릿해져버렸습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때때로 편파(?)적인 단체라는 이유로 학교로부터 교육거부를 당하기도 하지만, 교재 발간, 지속적인 워크숍이나 간담회 개최 등을 통해 노동인권교육을 위한 지역 네트워크 결성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해왔습니다. 또 청소년과 관련해 실업계고 현장실습과 학교 노동교육에도 문제제기를 하며, 일하는 사람의 권리와 행복에 대해 고민해왔습니다.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에도, 이명박의 청계천에도, 수많은 소민이 아빠들의 피와 땀이 있다는 사실 앞에, 인간의 품위를 지킬 수 없는 노동자와, 그런 노동자의 대물림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노동자의 품위를 지켜주지 못하는 세상은 매우 위험한 세상입니다. 그 품위를 특히나 자본에게 집중적으로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저는 자존심이 상해, 직장생활이 좀처럼 신명나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집중한 현장실습과 청소년아르바이트는 보란 듯이 비정규직 통로가 되어가고, 노동현장에서의 차별과 인권침해는 그 종류도 다양해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 곳곳에서 미약하게나마 인권경보음이 울려대니 그나마 참으로 다행이고 또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네트워크에 결합하는 단체도 조금씩 늘어나고 여러 단체와 지역단위에서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자생력이 생기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니, 역시 앞날은 희망입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하나둘 힘이 보태지면서 조금씩 명료한 길을 만들어 간다고 자가진단을 내려봅니다.

저는 국민의 대다수가 노동자이건만 자신이 노동자인지도 모르고 살도록 국민과 노동자를 이간질 시키고 있는 궤변스러운 일터가 이제 조금 보이는 듯합니다. 참으로 더디 가고 있는 제가 죄송스럽습니다만 저는 지금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