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한 자원 활동가의 끄적임

인권에 대해 생각합니다. 인권 활동에 대해 고민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인권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으며, 왜 인권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떠한 이유에서 인권이라는 이슈를 들추고 있는 지, 나의 활동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 지를 고민하고 생각했지만 답은 얻지 못하고 물음에 머물렀습니다. 의구심만 쌓여갔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회의하고 정체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영화 ‘내 이름은 칸’을 보았습니다. 영상, 음악, 시나리오, 위트 등 어느 하나 떨어지는 것 없어 대단히 만족스러운 영화였습니다. 영화관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여러 가지의 것들이 머리 속을 동동 떠다녔습니다. 주인공의 아귀에 쥐어진 조약돌들의 부딪힘이라덜지,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주인공을 자극하는 노란색의 오브제라덜지 말이지요. 허나 위와 같은 감각적 심상은 이내 가라앉았고 끝까지 부유하는 것은 아래 두 대사였습니다.
‘무고한 한 사람의 죽음은 인류 전체의 죽음과 같다’
‘두려움이 커진다고 해서 가던 길을 멈춰 서선 안 된다.’
그리고 이 둘은 각각 제가 물음표를 던졌던 두 가지의 답이 되어주었습니다.
나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무관심에 머무를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이를 통해 내가 왜 인권이라는 것을 삶의 한 축으로 삼아야 하는 지를 어렴풋이 자각합니다.. 더 이상 나의 움직임을 ‘고작’의 것으로 치부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나의 활동이 가시적인 변화, 모종의 결과로 곧장 이어지지 않을지라도 움직임에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책임이 시작된다고.
허나 그러한 책임은 이야기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는 세계 안에서는 싹트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하여 말을 틔우려 합니다. 바로 사랑방 안에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