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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기다리는 밤

칠흑 같은 밤입니다. 공해 탓인지, 부끄럼을 타는지 별은 보이질 않습니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이 자리에 앉아 별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득한 곳. 수억 광년이나 걸리는, 영원과도 같은 시간을 따라 달려올 한줄기 빛을 말입니다. 어린 시절, 어린이들을 위한 과학책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별은 수소 핵융합 활동으로 열과 빛을 내는데 이 과정에서 질량결손이 생기고 그 결손양이 에너지로 전환된다.’ ‘수소 핵융합’이니 하는 어려운 말들은 저로써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그것만은 알 수 있었습니다. ‘질량결손.’별은 목소리를 내기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는 것을요. 때로는 의구심을 품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지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믿자고. 흔들리지 말자고. 가슴으로 염원해 봅니다. 혹여 제가, 또는 우리가 만든 벽에 가로막혀 이곳까지 닿지 못할까 걱정하면서. 

“나 말이야. 무인도로 가고 싶어.” 언제인가 누나가 읊조리듯 말했습니다. 지친 표정으로. “그래도, 그래도 사람들이랑 부대끼면서 살아야지.” 그렇게 저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누나에게 던졌습니다. 사실, 세상사에 지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의 말이란 많지 않은 것입니다. 그저 동병상련의 정을 나눌 수밖에요. 사람들 틈에서 오히려 더 외로움을 느껴야 했던 우리들로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핥아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상처받고 힘들고 외로워도 그래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자. 저희는 그렇게 되뇌고는 하였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산다는 것. 그 시절 누나와 제겐 그것이 그토록 힘이 들었나 봅니다. 

얼마 전 또 한명의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술자리 안주처럼 가십으로 씹히던 이야기에 악어의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 남매의 기구한 인생사에 거짓 애도를 표하던 사람들. 또는 남은 아이들은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는 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제부터 그 집안에 그토록 관심을 가졌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죽고 나서야, 그것도 겨우 가십정도만의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나를 포함하여). 그저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얄팍한 관심을 던져주는 사람들이 미워집니다. 그 몰염치가 정말이지 싫습니다. 누군가 죽을 결심을 수차례 반복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였나 생각해 봅니다. 무언의 구원 요청에 좀 더 귀 기울여야만 하지 않았나요? 함께 산다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이 되어버립니다. 

인권영화제 정기회의 뒤풀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밤. 그날은 정말이지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소복이 쌓이는 눈을 밟으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눈이 오는 바람에 버스가 지연되는 탓인지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산이 없는지 덜덜 떨며 눈을 맞고 계시던 여자분 뒤로 가서 줄을 섰습니다. 모두들 지친 눈으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각자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저는 왜 앞의 여자 분에게 우산을 같이 쓰자는 말을 못했던가요. 우리는 왜 다른 곳을 볼 수밖에 없었나요. 하얗게 내리는 눈이 켜켜로 가슴에 쌓이던 날입니다. 

저는 지금 창가에 앉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무언가 들릴 것만 같습니다. 칠월칠석 견우와 직녀의 운명처럼, 우리는 터럭만큼의 거짓도 없이 만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아득한 별의 목소리가 더욱 그리워지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