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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선의 인권이야기] 대한문, 끝나지 않은, 계속 이어가야 할

“작년 4월 이곳에 분향소를 차리고 나서 해고노동자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전 이곳 대한문을 지켜야만 합니다.”

대한문 분향소를 평택 쌍용차 공장 앞으로 옮긴다는 소식을 듣고 쌍용차 해고노동자인 그가 했던 이야기가 계속 귀에 맴돌았다. 차가운 공기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한문 분향소의 마지막 저녁을 함께 했던 그날 참 마음이 시렸다. 생명을 살렸던 동아줄 같은 장소, 그 절박함이 몸에 새겨져 땡볕에도, 매서운 칼바람에도, 야비한 공권력에 시달리면서도 아랑곳 않고 오히려 더 질기게 더 단단하게 붙들어야만 했다. 그러하기에 대한문 분향소를 옮기기로 한 결정은 누구보다도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뼈아픈 것이었으리라.

더 이상 죽음의 행렬이 이어져서는 안 된다, 그 마음이 모여 2012년 4월 대한문 분향소가 차려졌다. 추모와 애도 속에서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묻고, 죽음에 무감해지는 사람들에게 “함께 살자”는 간절한 호소를 하기 위해서……. 진실을 덮으려는 자들이 하는 짓거리란 추모와 애도의 장소인 대한문 분향소라고 다르지 않았다. 용산 망루에 올랐던 사람들을 하루도 채 안 되어 철거했던 것처럼. 2013년 3월 불타버린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야 했던 사람들이 다시 세운 분향소 자리에는 애꿎은 화단이 들어섰다. 시멘 바닥 위에 흙더미를 쏟아 부어 결코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부끄러운 화단을 경찰들이 둘러서서 온종일 지키고 있는 이상한 풍경은 어느덧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익숙해져버린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대한문 분향소가, 오가는 곳곳에서 마주치는 너무도 많은 투쟁의 현장들이 마치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그저 풍경이 되어 버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 두려움을 놓아버리지 않으려고, 익숙함 속에서 외면하지 않으려고 더 깊숙이 마주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의 자리를 지켜가야 한다는 그 간절한 마음들이 모였고, 함께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무뎌지는 감각을 다시 깨워주었다. 그렇게 1년 7개월, 함께 버티고 지켜내 온 그 시간들을 통해 대한문 분향소는 추모와 애도를 넘어 함께 살기 위해 우리가 서로 만나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살아가는 게 이런 거구나.” 다시 용기를 얻었다고 한 쌍용차 노동자의 고백은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목숨을 걸고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봐도 꿈쩍 하지 않는 야만스러운 시대, 가족과 같았던 동료가 적이 되어야 했던 그곳에서, 그리고 동료들의 죽음을 접해야 했던 그곳에서 다시 싸움을 시작해보려고 한다는 쌍용차 노동자들. 그 무게를 우리가 함께 나누는 것, 그 자체가 “함께 살자”는 우리의 외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향소가 옮겨진 후 들린 대한문은 쓸쓸했다. 그러나 그 쓸쓸함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부당한 정리해고의 진실을 알리면서 그 자리를 지켜나가는 쌍용차 노동자들이 있고, “함께 살자”가 쌍용차 노동자들만이 아닌 삶의 자리들을 위협받으며 위태롭게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확인했던 우리가 그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것이기에.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서로를 통해 배운 감각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이어가고 싶다. 대한문에서 계속 당신을 만나고 싶은 이유다.

덧붙임

민선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