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성명/논평

[논평] 뿌리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국가인권위



인권 문외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아래 위원장)이 20일 취임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직후 직속기구화 시도에서부터 행정안전부의 조직축소방침으로 이어진 정권의 국가인권위원회(아래 국가인권위) 장악 시도는 현병철 체제를 낳았다. 정권이 드리운 먹구름 아래 가지가 부러지고 말라 비틀어지던 국가인권위는 이제 뿌리마저 썩어 들어가는 상황에 놓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명장 수여 자리에서 “인권에 관해서는 좌고우면하지 말”라며 “북한의 인권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를 강조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인권침해를 자행하며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를 재촉해온 대통령이, 국가인권위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말은커녕 사업방향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데도 현병철 위원장은 대꾸하지 못했다. 또한 인권위로부터 강하게 견제 받아야 할 경찰은 인권활동가들의 출입을 막으며 현병철 위원장의 취임식을 비호했다. 인권침해를 거름삼아 자라날 나무가 독이 될 것은 분명하다.

국가인권위는 이 모든 과정을 무력하게 받아들였다. 인권의 힘은 스스로를 겸손하게 성찰하고 권력에 강단지게 맞서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국가인권위는 인권단체들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고 검증 절차도 거치지 않은 임명을 받아들였고 취임식장 건물 앞에서 경찰이 버젓이 휠체어 장애인의 출입을 막는 인권침해에 맞서지 않았다. 현병철 위원장은, 부적합한 인물이라는 “인권 공동체”의 입장이 아니라 대통령의 임명을 선택하고도, 국가인권위가 “인권 공동체의 공공자산”이라는 취임사를 읽어내렸다. 현병철 체제가 인권의 언어로 인권의 가치를 훼손할 위험은 더욱 선명해졌다. 독을 품은 열매는 독일 뿐이다.

나무는 따가운 햇살을 견디고 비바람을 맞으면서 스스로를 키워낸다. 국가인권위는 인권침해의 현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정권이 드리운 먹구름을 뚫고 자라나 인권의 가치를 열매로 피워낼 생명력을 갖춰야 한다. 우리는 “함께하는 마음으로” 거름이나 물을 주지 않을 것이다. 뿌리가 썩어들어가는 줄도 모르는 국가인권위의 썩은 뿌리를 잘라낼 도끼가 될 것이다. 썩은 뿌리에서 우연히 열릴 낱알의 열매에 마음이 붙들려 나무를 쳐내야 할 시기를 놓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 아래 있는 현병철 체제의 국가인권위를 우리는 더욱더 치열하게 시험대에 올려놓을 것이다. 그 첫 시험대는 인권단체들이 취임식장에서 전달한 공개질의서다. 현병철 위원장이 성실하고 겸허하게 질의서에 답하기를 기대한다. 물론 스스로 사퇴한다는 결정은 언제나 모범답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