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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또 장애 학생 폭행…왜 이들은 '각오'를 해야 하나?

[인권으로 읽는 세상] 인강학교 사태에서 배워야 할 것

최근 서울시 도봉구에 위치한 특수학교인 '인강학교' 사회복무요원들이 학생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해당 학교의 교사들이 사건을 은폐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정황 역시 함께 드러났다.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사건 보도 이후 국정감사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며 "학부모들과 함께 분노"했다고 말했다.

 
그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온 '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사건(도가니 사건)'에서부터 서울 교남학교, 세종 누리학교 등 여러 특수학교에서 교사나 사회복무요원에 의한 폭행이 연달아 드러났다. 이번 인강학교 폭행 사건을 두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경악하기에 우리는 너무 많은 특수학교 폭행 사건을 마주하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그저 '장애 학생을 괴롭히는 나쁜 사람들'만의 문제일까? 인강학교 사회복무요원들은 경찰 진술 과정에서 "학생이 잘못했을 때 담임교사가 그런 식으로 하는 걸 보고 따라했다, 악의나 학대하려는 생각은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 악의나 학대하려는 생각은 없다고 말하는 모순, 학생이 잘못했을 때 담임교사가 때리곤 하는 교실, "백 번 말하면 알아듣지만, 그러느니 한 번 때리는 게 낫다"는 사회복무요원의 발언처럼 장애 학생 폭력을 정당화하는 학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지금 장애 학생이 마주하는 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특수학교가 가지는 긴장 
 
취학 연령이 된 장애 학생과 그 부모는 몇 가지 선택지 앞에 놓이게 된다. 가장 처음은 '특수학교에 입학할 것인가, 비 특수학교에 입학할 것인가'이다. 특수학교 입학을 선택할 경우, 일단 턱없이 높은 경쟁률을 마주하게 된다. 특수교육 대상자로 교육부가 지정한 장애 학생은 9만 명이 넘지만, 전국에 특수학교는 200개가 되지 않는다. 이번 폭행 사건이 드러난 인강학교는 도봉구에 하나뿐인 특수학교였다. 옆 노원구에서 입학 가능한 특수학교가 없어 인강학교로 입학한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특수학교를 바라보는 인식 역시 좋지 않다. 지난 해, 강서구에서는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무릎을 꿇은 장애 학생 부모들이 있었다. 신설되는 특수학교에는 주변 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린다는 근거 없는 비난이 쏟아진다. 게다가 특수학교 입학은 학생 자신이 가진 장애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특수학교 다니는 애'라는 시선을 온 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다. 장애 학생과 그 부모는 위축된다. 
 
어렵게 특수학교에 입학한다고 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 전체 특수학교 중 절반 이상은 사립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사립학교는 교직원이 잘 바뀌지 않고, 재단이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폐쇄적으로 변모하기 십상이다. 이럴 경우 부조리한 상황이 있어도 교사 개개인의 성품만으론 극복할 수가 없다. 장애 학생이나 그 부모도 어렵사리 입학한 특수학교에 문제제기하기란 쉽지 않다. 
 
특수학교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은 개별 학교나 임직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특수학교와 특수학교를 배제/고립시키는 주변 환경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에 가깝다. 운 좋게 '좋은 특수학교'를 찾아 들어가더라도 특수학교가 가지는 배제와 고립의 긴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좋은 운을 기대할 수 없기에 비 특수학교에 입학하기로 선택한 경우, 먼저 그 학교에 특수학급이 있는지 확인한다. 특수학급이 있다면 각자 장애 유형에 따라 그 학교에 접근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집에서 통학이 가능한 거리인지 확인한 후, 입학이 가능한지 확인한다.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특수학급이 없거나, 특수학급이 있더라도 경사로나 엘리베이터 설치가 되어 있지 않는 등 접근이 힘들거나, 이 모든 조건이 맞더라도 정원이 차 있으면 다시 다른 학교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 
 
특수학급이 아닌 통합학급이라는 선택지도 있다. 그러나 사회에 만연한 차별,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 체계 등은 통합학급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배제 없는 완전한 통합교육을 떠올리며 들어간 통합학급 안에서 다시금 배제와 고립을 경험한다. 그렇기에 다시, 누군가는 차라리 특수학교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렇게 어느 쪽이든 선택한 결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른 선택지로 옮겨 가기도 쉽지 않다. 최근 폭행 사건 피해자임이 확인된 특수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전학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여전히 그 학교에 다니거나, 등교를 거부한 채 집에 머물고 있다. 여전히 많은 비 특수학교에서는 특수학급의 설치가 어렵다며 장애 학생의 전학을 꺼린다. 장애인 교육권에 대한 절실한 요구로 2007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제정된 후 특수학교, 특수학급 및 특수교사의 수는 계속 늘어왔으나 실제로 장애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늘어나지 않았다.
 
선택에 따른 책임을 온전히 장애 학생과 그 부모가 져야 한다는 사실 역시 전혀 변하지 않았다. 특수학교와 비 특수학교, 특수학급과 통합학급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불안과 긴장은 사라지지 않고, 그 부담은 온전히 장애 학생과 그 부모에게 돌아간다. 교육을 받기 위해 장애 학생과 그 부모는 언제나 무언가를 각오해야 한다. 어떠한 폭력 사건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장애 학생의 교육권이 처한 현실은 이미 폭력적이다.
 
교육이 곧 폭력이 아니도록 
 
장애 학생에게 교육이 곧 폭력이 아니도록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 현재 특수학교가 배제와 고립의 공간으로 작용한다고 해서 특수학교를 전부 없애고 전면적 통합 교육을 실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특수학교가 가지는 긴장을 넘어 유의미한 교육의 공간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한 노력이다. 이를 위해 사립 재단 내 공익 이사 도입, 사립학교 공립화 등 특수학교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폐쇄적이고 배제적인 공간을 바꾸기 위해서는 일단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반대로 비 특수학교의 장벽이 높다고 해서 모든 장애 학생을 특수학교에 다니게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어떻게 비 특수학교의 장벽을 없앨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이다. 각 학교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경사로를 설치하는 등 물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한 시도는 이 사회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 준비다. 특수학급이나 통합학급을 설치, 운영할 수 있는 지지기반 마련 역시 중요할 것이다. 
 
모두의 권리에서 출발하는 교육 
 
또한 현재 장애 학생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선택지를 개선하는 일과 더불어, 장애 학생의 선택지를 늘리는 일 역시 중요하다.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체제 속에서 장애 학생은 흔히 경쟁의 트랙에서 벗어난 존재들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상상하는 교육이 정말 입시경쟁 뿐이라면, 마찬가지로 경쟁의 트랙에서 벗어난 수많은 존재들은 교육이 필요 없는 존재들인가? 장애 학생뿐 아니라 소위 '학습이 부진한 학생', '대학에 가지 않는 학생',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 등과 함께하지 못하는 교육은 너무 빈약하고 초라하다.
 
최근 장애 통합교육 연구는 통합학급에서 장애 학생을 포함한 각 학생의 요구에 맞는 수업을 제공하는 형태를 제시한다. 최초 통합교육이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간의 통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최근에는 모든 학생의 개별적 특성 –학습 진도, 흥미, 진로 등- 과 광범위한 배경 –인종, 문화, 언어 등– 에서의 다양성과 차이를 고려하는 교육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의 교육권은 서로 다르지 않다. 그 실현을 위해 서로 다른 과정과 서비스를 필요로 할지언정,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인권으로써의 교육권은 모두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장애인 교육권에 대한 고민은 곧 우리 사회 교육에 대한 고민이다. 장애 학생 폭행 사건에 대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경악을 넘어, '폭행 사건이 있을 수밖에 없는 지금의 교육'을 바꾸기 위한 고민을 나누자. 이 사회 구성원 모두의 권리에서 출발하는 교육을 상상하고 실현하자.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불안한 교육이 아니라, 어떤 선택이라도 즐거운 그런 교육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