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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인권위원장 인선절차 좀 마련하라고 보낸 한 달

기대와 우려 속에 출발한 이성호 인권위원장 체제를 맞아

“국가인권기구의 장은 권력기관이 자신의 인맥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의 벗으로서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를 감시해야 합니다. 독립적으로 인권기구의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으로 뽑으려면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투명한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게 지난 5년간의 인권단체들의 요구였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무자격자인 현병철을 인권위원장으로 임명한 이후 인권단체들은 어떻게 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확보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중 하나가 권력의 눈치를 보는 인권위원들이 인권위에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밀실인선, 보은인선’의 관행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권에 대해 알고 인권감수성이 있는 사람이 인권위원이 될 수 있도록 ‘인권위원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서 거기서 인권위원을 뽑는다면 인권위원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는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그러한 내용을 담은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그리고 2014년에 국가인권기구간 국제조정위원회(ICC)에서도 ‘시민사회기 참여하는 투명한 인권위원 인선절차’를 권고하면서 한국 인권위 등급심사를 보류했다. 하지만 청와대, 국회, 대법원 모두 그 관행을 지속했고 2015년 3월까지 등급심사는 3번이나 보류당했다. 정말 국제사회에서는 없는 초유의 일이었다. 2015년 3월 등급심사 보류 결정에서는 8월 인권위원장이 교체되는 시기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주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7월 20일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은 권고와 상관없이 이성호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후보자로 내정했다. 그 후로 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바쁘게 한 달을 보냈다. 청와대에게 권고를 왜 이행하지 않느냐고 이행하라고 수차례 기자회견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성호 후보자에게도 당신으로 인해 ICC 등급심사 결과 등급하락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공개질의를 했다. 그도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그리고 8월 11일 인사청문회 이후 13일에 그는 인권위원장으로 취임했다.

 

현병철이 기준이 된 한국사회

 

인사청문회에서 밝혀진 것은 그가 인권에 관해 활동하거나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아파트계약을 맺을 때 다운계약서를 써서 1천만 원 정도 탈세했다는 사실, 판사 시절 결재를 꼼꼼히 하지 않아 사무관이 작성한 인권 침해적 보정명령을 성별 정정 신청을 했던 성전환자에게 모욕감을 줬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인권위원장이 되었다. 인권위법에 명시된 인권위원의 자격에는 부합하지 않고 인권단체들이 만든 인권위원 자격가이드라인에도 맞지 않지만 인권위원장이 되는데 문제가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그런데 더욱 우려되는 것은 근거 없는 이성호 위원장에 대한 기대이다. 현병철 전 위원장 시절 인권위가 정부 눈치를 보며 내렸던 결정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못이 박혔고 우리 사회 인권기준을 낮췄기에 사람들은 아무리 못해도 현병철보다 낫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이성호 위원장은 판사 시절 간첩조작사건인 아람회 사건을 판결하면서 선배 판사들을 대신해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법관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 사람들은 최소한 무조건 권력 눈치를 보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권위원장이라는 자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다. 인권위는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 인권에 대한 확실한 신념, 독립성으로 우리 사회 인권기준을 향상시키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권력 눈치, 여론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런데 그의 인사청문회 답변이나 취임사를 보면 그의 ‘주춤’과 ‘인권현안에 대한 무관심’이 보인다. 특히 인권의 특성을 너무 모른다. 아니 인권이 어떻게 불의한 권력과 맞서며 박탈된 약자의 인권을 찾기 위해 싸웠는지, 인권의 그 처절함을 모른다. 그가 인사청문회에서 “저항권적 인권개념에 치우치지 않겠다”고 한 발언을 듣고 인권활동가들을 우려한 까닭이다. 나아가 이 발언이 권력에 저항하는 인권단체들이나 사회적 약자들과 거리를 두겠다는 뜻은 아닐까 걱정된다.

 

하지만 아직 인권단체들은 이성호 체제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인권위를 이끌어가는지 좀 더 두고 보겠다는 입장이다. 취임사에서 인권위 독립성을 지키고 시민사회와 협력하겠다는 그의 발언이 어떻게 현실에서 이루어지는지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한국 인권상황은 매우 나쁘다.

 

그가 인권위의 혁신 과제인 인권현안에 대한 개입, 투명성과 민주성 확보, 시민사회와의 소통, 사무총장의 교체를 시작으로 한 인권위의 인적 혁신 등을 얼마나 제대로 실천하는지를 보고 이성호 체제에 대해 평가를 할 것이다. 그가 제발 인권위를 제자리로 돌려놓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