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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세월호 속 아홉 명과 그들의 가족에게 ‘인권’이라는 말을 어떻게 꺼내죠?

그토록 무거운 배가 물 위에 떠 있다는 것은 언제든 가라앉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목숨이 위태로운 사고의 위험이란 모든 생명에 항상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울타리를 만들어 살아간다. 스스로를 지키는 나, 피붙이를 지키는 가족, 제도로서 서로를 지키자고 약속한 국가와 사회. 그리고 우리가 경험해본 적 없는 어떤 공동체 무엇. 세월호 참사는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질문했다. 적어도 국가는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가족이 아니고서는, 어떤 울타리가 남을까.

아직 장례조차 치를 수 없는 죽음

망자에 대한 최선이자 최소한의 애도의 표현인 장례조차 치를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도대체 인간이 왜 사회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가 반문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죽음, 거대한 폭력에 의해 시신조차 훼손된 무참한 죽음, 애도할 기회와 애도 받을 권리조차 얻지 못한 죽음들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지만 더 이상 그런 죽음은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스스로 배에 올라타 여행과 새로운 삶에 들떠있던 사람들이, 가라앉은 지 449일(7.8.)이 된 배 안에 아직도 갇혀 있는 상황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미수습자 가족들의 고통은 왜 이토록 길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무엇이 이들을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서있지 못하도록 하는지 밝혀야 한다.

구조-수색 과정에 정부는 없었다. 아니, 방해세력으로서 존재했다. 구조-수색 초기, 해경은 언딘의 바지선을 기다리느라 30시간을 허비했고, 자신들과 유착된 기업에 특혜를 주느라 보다 나은 (그리고 잠수사들에게 안전한) 수색작업을 만들고 지원하는 책임을 외면했다. 정부는 범대본을 통해 미수습자 가족들의 의견을 듣는 시늉을 했지만 뒷짐 진 채였다. 수색장기화의 부담은 오롯이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떠넘겨졌다.

지난 1월, 실종자 수습과 세월호 인양,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도보 행진을 하는 세월호 가족들.

▲ 지난 1월, 실종자 수습과 세월호 인양,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도보 행진을 하는 세월호 가족들.


미수습자 가족들의 시간

진도체육관 스크린에서 재생되던 사고해역 화면은 마치 정지화면 같았지만 진도 앞바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자리는 온갖 비리, 모순, 희생자들의 고통과 절규가 얽혀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진도에서 미수습자 가족들의 시간이 그러했다. 슬픔과 기다림의 잔잔한 물결 같지만 실상은 지옥과 같은 일상의 연속이었다. 힘겹게 눈을 떠 밥술을 뜨는 둥 마는 둥 멀미약을 챙겨먹고 팽목항으로 한시간반, 배를 타고 사고해역으로 한시간반. 바지선에 올라 민간잠수사들을 붙들고, 어디어디에 내 딸이 있습니다, 우리 애를 이곳에서 봤다는 애가 있었어요, 오늘은 여기를 꼭 수색해주세요……. 혹은 아무 말 못하고 바다만 바라보던.

새로 올라온 시신이 혹시나 내 가족일까 싶어 하나하나 확인하고, 시신을 안고 떠나는 가족들에게 도리어 축하인사를 건네고, 보내곤 쓰러져 울던. 범대본 회의에 가서 해경 간부의 오락가락하는 무능한 얘기를 듣고 또 듣고, 따지고. 많은 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체육관 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지만 희망은 점점 보이지 않고. 대부분의 희생자 가족들이 경험한 일이지만 그런 일상이 미수습자 가족에게는 너무 여러 날 반복되었다.

수색종료 결정을 이끌어낸 정부

정부는 가족들이 선내 수색활동 종료를 요청하는 형식으로 수색작업을 매듭짓고자 했다. 잠수사들의 잇따른 사고, 민간업체의 철수의사표시와 번복, 이 과정에서 정부는 책임은 철저히 외면한 채 그 부담을 온전히 미수습자 가족들이 떠안도록 내몰았다. 정부는 아주 비열한 방식으로 가족들의 수색종료 결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11월 11일 가족들의 눈물의 기자회견 이후 해수부는 수색 종료를 선언하고 곧바로 범대본 해체 수순을 밟았다.

이미 여름부터 수색종료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던 정부는 인양에 대한 기술적 검토를 2014년 5월에 이미 끝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인양을 차일피일 미뤘다. 비용문제, 위험성 등을 내세운 여론 공세를 펴나가며 인양 문제를 정치적으로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파괴된 일상을 수습할 여력도 없는 미수습자 가족들이 일인시위 등을 이어가며 인양을 눈물로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권한과 위상을 대폭 축소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내놓으며 유가족들을 돈으로 모욕하는 한편, 못 이기는 척 인양 발표를 했다.

현재 인양참여 업체 선정과정 단계이며 예상되는 인양 완료시기는 내년 9월이라고 한다. 가족들 중 일부는 인양작업이 시작되면 진도에 다시 내려가겠다고 한다. 고통의 시간은 길어져만 간다. 구조실패-수색 부실-인양 미루기, 총체적 무책임으로 일관한 정부 대응이 이토록 긴 시간 미수습자 가족을 고통으로 내몬 것이다.

빼앗긴 권리, 그래서 말하기 시작해야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이들 앞에서 우리는 그 어떤 권리의 말을 꺼내기도 쉽지가 않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몇 가지 단초가 있다. 상상하기 힘든 피해를 당한 가족들의 고통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마지막 한사람까지 찾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어떻게 이행되었는지 밝혀야 한다. 정부의 정치적 저울질이 고통의 무게를 차별하고 피해자들간의 벽을 만들어냈다는 점,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이 피해자들의 불안감과 불신을 강화하며 없는 갈등도 만들어냈다는 점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참사의 피해자 각자가 고립돼 세상 그 누구도 몰라줄 아픔의 주인공으로만 남도록 해서는 안 된다.

삼켜버린 삼백사명 중 아홉명을 아직까지 놔주지 않고 있는 세월호의 인양과정을 낱낱이 지켜보고 기록해야 한다. 세월호를 조속하고 온전히 인양해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기나긴 싸움을 지속해야 한다. 스웨덴 바사박물관은 1628년 침몰한 전함 바사호를 333년만인 1961년에 인양해 전시해 놓은 곳이라고 한다. 그곳에는 침몰 원인까지 상세하게 전시되었다고 하는데 바사호의 침몰 원인은 ‘북방의 사자왕’ 구스타브 2세가 30년 전쟁 시기 발트 해를 독점하겠다는 야욕으로 애초 설계와 다르게 함포 배열을 복층구조로 변경, 대포 수를 두 배로 늘리고 과도한 장식을 넣어 만들어 무게중심이 올라가 복원력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서 소름이 끼친다. 수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실, 탐욕이 재앙을 낳는다는 점을 우리는 세월호를 인양해 두고두고 기억하고 곱씹어야 한다. 가족을 영영 못 찾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진실을 알 권리, 고통을 치유 받을 권리조차 유보하고 있는 미수습자 가족의 손을 잡고 진실을 향한 싸움에 함께 할 것을 다짐해야 한다.

아홉 명의 미수습자를 기억해야 한다.

▲ 아홉 명의 미수습자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월호 그 끔찍한 배 안에 아직까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순식간에 깡그리 사라져버린 권리의 주체들이 눈을 감지 못한 채 바다 속에 있다. 조은화, 허다윤, 박영인, 남현철, 양승진, 고창석,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님. 이 아홉 명이 아직 세월호 속에 있다. 죽은 이들은 권리를 주장할 수도 누릴 수도 없다. 단 하나 남은 권리가 있다면 땅 위로 올라와 치러질 장례일 테다. 그것이 남은 가족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최대의, 최소한의 위안이 될 것이다.


덧붙임

최예륜 님은 416인권실태조사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