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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앗간] 도시화 속 위태로워지는 소수자 인권

차별금지 강조 없이 인권헌장 제정?

지난 한 주는 그야말로 ‘동성애합법화 반대 시민연합’이 벌인 두 건의 사건으로 시끌했던 시간이었다. 하나는 17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서울시민인권헌장 동성애 차별금지 조항 반대’ 집회이며 다른 하나는 20일 이들이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공청회를 무력 점거하며 집단 난동을 벌인 사건이었다.

보수 기독교 단체를 위시한 이들 연대는 인권헌장 제정 회의가 시작되던 9월부터 각 일간지에 동성애 차별금지 조항 반대 전면 광고를 게재하고, 관련 공청회에 참석해 회의 논의를 동성애 반대 이슈로 끌고 가서는 인권헌장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극단적 결론을 도출하려고 애썼다. 덕분에 공청회에는 다양한 일반 시민의 의견을 듣는 장이 아닌 감정적으로 격해진 이들의 주장으로 혼재되는 시간으로 마무리 되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시청에서 제정의원 회의가 있을 때마다 꾸준히 집회를 열어 동성애 차별금지 조항을 빌미로 서울시인권헌장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동성애 차별금지가 서울시민을 차별하는 것이라는 어이없는 논리

필자는 지난 7월 무작위 추첨에 의해 인권헌장 제정의원으로 선발돼 현재 제정의원으로 활동 중이며, 헌장의 전체적인 성격을 규정하는 일반원칙 분과에 배정되었다(144명의 제정위원이 활동 중이며, 이들은 일반원칙, 환경과 문화, 더 나은 미래, 복지와 안전, 헌장의 이행, 참여와 소통 등 6개 분과로 나뉘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처음 두 회의는 별 분쟁 없이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각자가 포함되길 바라는 내용을 제시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격렬한 토론이 이뤄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제시된 안건을 수렴하고 선정하기 시작하는 3차 회의부터는 논의가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속한 일반원칙 분과의 회의 내용의 대부분은 ‘차별 금지’에 대한 논의로 소비되었다. 이중 단연 논의의 핵심이 된 주제는 동성애 차별금지 조항이었다.

의견은 두 가지로 갈라졌다. 동성애 등의 내용을 포함, 차별금지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측과 구체적 명시보다 포괄적으로 모든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고 게재해야 한다는 측으로 나뉘어졌다. 차별금지의 대상을 포괄적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측이 그 명목으로 내세운 것은 동성애였다. 이들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혐오범죄의 대상이 되거나 직장에서 해고되고, 각종 폭력에 노출되는 등의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성애가 퍼트리는 에이즈 등의 질병과 출산율 저하, 청소년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성문화 전파 등 동성애를 차별금지의 대상으로 삼으면 비동성애자인 타 서울시민이 오히려 차별을 받는다는 이중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서울시민 대다수가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가 만드는 인권헌장에 서울시민이 반대하는 의견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다수결 논리도 들고 나섰다. 인권헌장 제정 목적이 다양한 계층의 인권을 존중하지 못하고 소수의 기득권 중심의 논리를 정상성으로 규정하는 현 주류 도시 문화를 견제하고 모두가 평등한 시민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여기에 다수결 논리를 들고 나서는 제정 목적에 위반되는 행동들을 지속적으로 보인 것이다.

이들은 동성애에 대한 논리를 지속적으로 편 뒤 이를 명목으로 인권헌장 차별금지 기재 항목에 다른 차별금지 대상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말고 ‘모든 차별을 금지한다’는 포괄적 명시로만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각한 양극화로 치닫는 도시 문화에서 소수자 인권 감수성을 자발적으로 구축하기는 어려운 실정이기에 차별금지 대상의 구체적 명시를 통해 시민들에게 이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해외 도시인권헌장은 물론 국가인권위원회법에도 차별금지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한 고려는 없어 보였다. 그저 동성애를 명목으로 차별금지의 내용을 축소시키는 것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차별금지법 막기 위해 인권헌장 제정 막아야 한다고?

서울시인권헌장 제정 반대의 선두에 서있는 ‘동성애 합법화 시민연합’의 이용희 공동대표는 기독교 단체인 에스더기도운동본부 대표이다. 이용희 대표는 각종 관련 집회에서 서울시민이 동성애에 갖는 부정적 감정을 이용해 제정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그가 운영하는 에스더기도운동본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들 단체의 다른 목적을 엿볼 수 있다. 인권헌장 제정이 차별금지법의 도화선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뒤 타 종교와 기독교 교계에서 혐오하는 계층에 대해 비방할 수 없게 된 영국의 상황을 예로 들며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한국 교회가 위기에 빠진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벨파스트교회 제임스 목사가 이슬람교를 이교도이며, 사탄이며, 지옥으로 끌고 가는 교리라고 말했다가 차별금지법에 걸려 경찰에 소환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 단체들이 설파하는 전도 논리에 타 종교와 소수 계층에 대한 비방이 섞여있기에 이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나 헌장을 제정하게 하면 안 된다는 논리였다.

이들의 주장은 서울시인권헌장의 제정 목적과 상당히 위배되는 부분이 많다. 종교 논리로 무장해 다양한 사회적 계층에 대한 고려 없이 그들만의 ‘다른’ 개념의 평등과 ‘다른’ 개념의 인권을 이야기 하지만 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사회적 관심은 부재해 보인다. 제정위원 회의에서도 이들이 잘못된 에이즈 통계 등 부실한 근거자료와 소수자 인권을 배제하는 다수결 논리를 들고 나와도 이를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잘 갖춰지지 않은 형국이다.

현재 일반원칙 분과 내에 차별금지 대상 명시에 대한 부분은 분과 내에서 미해결 항목으로 처리돼 오는 11월 28일에 진행되는 6차 회의에서 전체회의를 통해 그 운명을 결정짓게 됐다. 도시에서 위태로워지는 인권을 염려해 만드는 헌장임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에 강조점을 둘 수 없다면 인권헌장이 왜 제정되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6차 회의의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덧붙임

코린 님은 언니네트워크 운영지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