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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인권위, 파장? 파장!

[인권위 파장?파장!] “니들이 우리가 어떤 맘으로 구덩이를 팠는줄 아나!”

“니는 뭐꼬!”

내가 인권침해조사단으로 밀양에 도착해 이런저런 상황 설명을 들을 새도 없이 행정대집행이 진행될 것이라는 급박한 연락을 받고 달려간 금곡헬기장에서 제일 처음 들었던 말이다. 할매, 할배들은 현장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화가 아주 많이 나신 듯 보였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던 한 기자를 밀치면서 “이래 찍어 가면 뭐 하노. 하나도 안 나온다 아이가!” 하며 고함을 지르셨다. 덩달아 옆에서 촬영하고 있던 나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형광색 조끼를 입고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내 모습이 ‘인권침해감시단’이라는 글자를 읽을 겨를이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내가 기자인지, 활동가인지, 행정대집행 하러 온 공무원인지 분간하실 수가 없으셨을 게다. 그 벼락같은 호통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는 밀양이다!

정부와 한전, 그리고 경찰에 의해 갖은 모욕과 폭력을 당하며 싸워온 할매, 할배에게 언론은 또 다른 상처를 주었다. 실컷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어가고도 사실과 다르게 보도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보도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이른바 ‘통합진보당 구덩이 사건’으로 인해 동화전 마을 96번 현장의 할매들은 이를 반박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위해 1시간여 올라온 산길을 다시 내려가야 했다. 악의적으로 쓴 기사 몇 줄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바로 앞에서 지켜보게 된 나는 각자의 위치에서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지난 1일, 밀양에서 송전탑 공사가 재개된 이후 주민들과 경찰, 한전의 충돌이 계속 되고 있다. 이에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아래 대책위)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긴급구제 요청을 제기했다. 대책위가 요청했던 것은 ‘주민들의 공사현장 자유로운 출입’, ‘음식 및 식수 반입’, ‘비가림막(천막)허용’, ‘의료진 출입 허용’이었다. 이것은 최소한의 요구였다. 하지만 인권위는 이를 상임위원회에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경찰이 주민들의 통행과 관련한 것을 제외하고 즉각 허용하기로 약속했단다. 그리고 공사현장을 전면으로 막은 것이 아니고, 일부 현장에는 주민들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는 경찰의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목소리를 내야할 때 침묵하기

솔직하게 말하면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인권위의 존재를. 지금처럼 인권위가 꼭 입장을 표명하고, 존재를 드러내야 할 때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인권위의 존재를 상기시키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인권위는 강정마을에서, 한진 중공업에서, 쌍용자동차에서 그리고 이번 밀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목소리를 내야할 때 침묵하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긴급해야 인권위가 이야기하는 긴급구체 신청 요건에 맞는 것일까?

밀양에서 만난 파란색 조끼를 입은 인권위 직원들은 주민들보다 경찰들과 더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한참이나 경찰버스에 타서 무엇인가 대화를 나눴고, 주민들에게 와서는 경찰의 입장을 말했다. 앞에 서서 몇 마디 말만 하고, 다른 현장을 둘러본다는 핑계로 주민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가버렸다. 하지만 경찰들은 인권위가 왔다간 다음에는 주민들의 항의와 요구를 잠깐이나마 들어주는 ‘척’을 했다. 이렇게 인권위는 공권력의 알리바이로, 방패막이로 잘도 이용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경찰들은 당당하게 말했다. “국가인권위에서 오면 다 (공사현장에) 들여보내주고, 요구하는 것들 다 들어드린다.”고. 그렇게 경찰들의 온갖 협조를 받으며 현장에 내려왔던 인권위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간 것일까? 그들이 보고 듣고 조사한 것은 대체 무엇이기에 대책위의 긴급구제 요청을 상임위원회에 상정조차 하지 않은 것일까.

아마도 사지가 들려 연행되는 주민들, 감시 수준의 불법채증, 신분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사복 입은 경찰들의 일상적인 조롱과 무시는 보지 못했나보다. 평생 일궈온 땅을 송두리째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주민들의 두려움과 그저 살던 대로 살게 해달라는 절절한 외침은 들리지 않았나보다. 송전탑 공사현장으로 향하는 모든 길을 2~3km전부터 막고 서 있는 경찰들 때문에 “공사가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 가까이서라도 보고 싶다.”는 주민들의 절망감이 느껴지지 않았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이나 한전직원들 다 자식 같은 사람들인데…….” 하는 할매, 할배의 커다란 산 같은 마음은 더 더욱이 들여다 볼 수 없었겠지.

한전과 경찰에 맞서 싸우고 있는 밀양주민들 모습

▲ 한전과 경찰에 맞서 싸우고 있는 밀양주민들 모습


동화전 마을 96번 송전탑 현장에서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드러누워 계시던 한 할매가 기자들에게 이렇게 고함치셨다.

“니들이 우리가 어떤 맘으로 구덩이를 팠는줄 아나!”

이 호통을 들을 사람은 비단 기자들뿐만이 아니다. 인권위는 어설픈 중재자 노릇은 당장 그만두고, 누구의 편에 서서 어떤 사람들의 맘을 헤아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밀양 주민들처럼 이 땅에서 상처받고, 내몰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덧붙임

이은정 님은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