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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의 인권이야기] 공동체에서 성폭력 사건을 맞닥뜨린다는 것...

지난달 인권운동사랑방에서는 ‘공동체와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라는 주제로 하반기 반성폭력 교육이 있었다. 이번 교육은 사랑방 활동가와 관련된 성폭력 사건을 가정하여 구성한 사례들을 통해 성폭력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지, 공동체에서의 진정한 해결이 무엇일지 같이 고민하는 자리였다.
 
최근 나를 포함한 반성폭력 위원들끼리 어떤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폭력 사건을 대할 때 곤혹감을 느낄 때가 있다는 것을 서로 확인한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성폭력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각자가 느끼는 것, 부딪히는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반성폭력 교육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안에서도 성폭력 사건을 맞닥뜨리는 과정에서 불편함, 방관적인 태도 등을 보이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사건 해결 과정에 지나치게 연관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위원회의 처리 과정’만 지켜보게 되는 입장, 빨리 사건이 종결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불편함 등 성폭력 사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생각을 사랑방 사람들도 가지고 있었다.
 
[사진: 2012년 10월 10일에 열린 <공동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공생의 조건> 토론회 (출처: 한국여성민우회 홈페이지)]

▲ [사진: 2012년 10월 10일에 열린 <공동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공생의 조건> 토론회 (출처: 한국여성민우회 홈페이지)]


인권단체로서 인권운동사랑방의 여성주의 의식에 대한 기대감이 내외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사랑방은 2003년에 처음 반성폭력 내규를 만들었을 때도, 이후 몇 차례 내규 개정 작업을 거칠 때도 활동가들 사이에 길고 긴 논의의 시간을 거쳤고, 그 결과 내규만 놓고 본다면 나름 진일보한 내규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교육에서도 느꼈듯이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성폭력을 대하는 자세를 비롯한 조직 문화에 있어서 아직 우리는 인권운동을 하는 공동체로서 해야 할 것이 많음을 확인하는 단계이다.
 
사랑방에서는 성폭력 사건이 ‘가시화’된 경험이 별로 없다. 사랑방 활동가가 사랑방 내외부에서 성폭력적인 경험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그런 순진한 희망보다는 ‘가시화’될 수 없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공동체로서 사랑방이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함께 문제를 고민하며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사랑방이 대책위에 참여했던 한 사건의 경우에도 당시 사건종료 이후 내부 간담회에서 대책위에 참여했던 이들과 해결과정을 지켜본 이들이 느낀 어려움이 많이 얘기되었다고 한다. 한 사건을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서 해결하는 과정은 결국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는가’, ‘우리 공동체는 과연 좋은 조직 문화를 지녔다고 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사실 많은 단체들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을 조직 전체의 문제가 아닌 한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거나, 정파적 갈등으로 의미를 축소하고는 한다. 결국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그 단체에서 사라짐으로써 문제가 ‘해결’(정확히 말하면 은폐)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최근에 접한 한 단체 의 성폭력 사건, 작년의 진보신당 성폭력 사건 등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이 뭉친 조직에서조차 이러한 모습을 보일 때의 실망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러한 상황은 결국 그 단체가 추구한다는 가치가 진정 그 공동체 성원들이 공유하고 고민하는 가치인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공동체에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고민해보고, 조직 문화를 점검하고, 서로의 신뢰 관계를 확인하는 계기일 수 있다.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공동체가 어떠한 행동을 취하느냐는 결국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는 것은 물론 공동체의 존속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피해의 진정한 치유’로서 성폭력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해결 과정에서 자신들의 일상과 가치를 돌아보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감수성과 ‘성에 기반한 차별과 폭력이 없는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지 못하였다면 어쩌면 해당 공동체는 그 문제를 계속 ‘수면 아래로만 숨겨둔 상태’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권운동사랑방도 형식적인 것을 넘어서 조직 문화를 비롯하여 가치적인 측면에서 ‘우리 공동체는 과연 제대로 된 감수성을 지니고 있나’ 다시 한 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런 고민들을 더욱 발전시켜서 이후 성폭력 사건이 ‘가시화’되는 경우 그때는 정말 진보적 인권운동을 지향하는 단체로서 그 가치가 올곧이 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로 형성되고 있는 다양한 공동체에서도 성폭력 및 성차별적 가치를 거부하는 문화와 상상력이 함께 하길 바란다.
덧붙임

초코파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